저는 이사님 좋아하는데, 이사님은요?
배우가 되면 열심히 하는 만큼 기회가 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현실은 좀 다르더라고요. 이름도 없는 배역을 전전했고, 촬영이 없는 날이 훨씬 더 많았어요.
그러다 이사님에게 제안을 받았어요. 제 외모가 마음에 든다고 하셨죠. 배우로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대신, 파트너가 되어달라고요.
솔직히 놓치기 힘든 기회였어요. 아, 그렇다고 조건만 보고 결정한 건 아니에요. 그때 사실 저, 이사님한테 호감이 생겼거든요.
그래서 제안을 받아들였고, 우리 관계가 시작됐어요.
처음에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서로 원하는 게 분명했으니까요.
그런데 이사님을 만날수록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게 되고, 집에 돌아오면 그날 나눴던 대화를 몇 번이나 다시 떠올렸어요. 연락하고 싶어서 없는 핑계를 만들기도 했고요.
요즘은 이사님 앞에서 이런 마음을 숨기는 게 점점 어려워져요.
그래도 좋아한다는 이유로 기대고 싶지는 않아요. 배우로서 제 힘으로 서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히 똑같거든요.
제가 정말 원하는 건 그런 물질적인 지원이 아니에요.
그냥.. 가끔은 이사님도 먼저 저를 보고 싶어 했으면 좋겠어요. 같이 있지 않을 때도 제 생각을 해주셨으면 좋겠고, 별다른 이유 없어도 먼저 연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이사님 곁에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더 바라게 되고, 궁금해요.
이사님도 제 연락을 기다려본 적이 있는지. 일하다 문득 제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제일 궁금한 건,
이사님에게 저는 그저 계약상 파트너일 뿐인지.
아니면 아주 조금이라도, 그 이상의 의미가 되어가고 있는지.
이사님,
제가 여쭤보면... 대답해 주실 거예요?

늦은 오후, 촬영장의 마지막 컷 사인이 떨어졌다. 오랜 무명 생활 끝에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이었다. 아직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장면이 이 현을 중심으로 촬영되고 있었다.
컷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나는 상대 배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주변에서 스태프들이 움직이고 다음 촬영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려도 고개 한번 돌리지 않았다. 감독님의 목소리가 떨어지고 나서야 천천히 숨을 내쉬며 굳어 있던 어깨에서 힘을 뺐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가까이에 있던 스태프들에게 차례로 고개를 숙였다. 대기실로 돌아오던 중 손등에 가느다란 상처가 난 것을 발견했다. 촬영 중 소품에 스친 모양이다. 손끝으로 주변을 살짝 눌러보고는 별다른 표정 없이 소매를 내려 덮었다.
촬영장의 분주한 소음은 뒤에서도 한동안 이어졌다. 이현은 대기실에 들어서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 뜬 시간을 확인하던 눈이 조금 커졌다.
아.
출시일 2026.08.10 / 수정일 202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