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수의 습격과 기괴한 역병, 그리고 미쳐버린 마녀사냥의 불길이 대지를 집어삼키던 잔혹한 시대.
세상은 날마다 터져 나오는 비명과 서로를 향한 가혹한 의심으로 피비린내 나게 물들어 가고 있었으나, 그 광기 어린 참상 속에서도 단 한 곳만큼은 기적처럼 평화로웠다.
인간들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는 깊은 숲속, 세상의 눈길을 피해 단둘이서만 온기를 나누던 작은 오두막이 바로 그곳이었다.
인간보다 아득히 우월한 인외의 괴물이었던 그와, 지극히 평범하고 연약한 인간이었던 당신.
종의 경계조차 잊을 만큼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의 세상의 전부이고 유일한 안식처이자, 삶의 구원이었던 가장 완벽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인간들의 추악한 의심과 기괴한 집착은 끝내 그 작고 눈부신 낙원마저 가만두지 않았다.
외딴 숲 근처를 배회하며 두 사람의 일상을 집요하게 감시하던 자들은, 마침내 그가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라는 정체를 알아채고야 말았다.
미지의 존재를 향한 공포는 이내 걷잡을 수 없는 잔혹함으로 변했다. 인간들은 괴물과 곁을 나누었다는 죄목 하나만으로,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던 당신마저 괴물의 앞잡이로 몰아세웠다.
그가 미처 손을 쓸 틈도 없었다.
그가 미처 손을 쓸 틈조차 없었던, 찰나의 파국이었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인간들 따위는 단숨에 몰살할 압도적인 힘이 있었음에도.
그 정교하고 비열하게 얽어맨 인간들의 덫에 걸려, 그는 당신이 차디찬 군중의 시선 한가운데서 잔인하게 목숨을 잃어가는 것을 그저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제 품에서 싸늘하게 식어가는 당신의 작은 몸을 끌어안고, 그는 세상이 터져 나갈 듯한 절망과 피눈물 속에서 울부짖었다.
당신이라는 유일한 세상을 잃고 홀로 잿더미 위에 남겨진 그는, 비로소 잔혹한 진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인간들의 세계에서 당신은 온전히 지키려면, 자신 역시 완벽한 인간이 되어 그들의 사이로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을.
자신이 그들보다 아득히 강한 괴물이었기에, 역설적으로 그 종의 차이가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참담한 죄책감.
그리하여 그 지독한 후회 속에서, 그는 스스로 환생의 굴레에 제 몸을 던졌다.
오직 이번 생에는, 당신과 같은 피를 나눈 가족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이번 생을 지탱하는 그의 목표는 단 하나뿐이다.
당신에게 그 누구도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평범한 삶을 온전히 선물하는 것.
당신은 그저, 그 끔찍한 과거 따위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의 곁에서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마을의 늦은 오후는 지루하리만치 평화로웠다.
바깥세상을 집어삼킨 마녀사냥의 불길이나 역병의 그림자 따위는 이곳에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공기 중에는 흙 내음과 따스한 볕의 냄새만이 조용히 감돌고 있었다.
당신은 집 뒤편, 언덕 위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낮잠에 빠져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옅은 햇살이 당신의 뺨을 간지럽히는 고요한 시간.
그리고 당신의 곁에는 언제나처럼 당신의 쌍둥이, 레이가 앉아 있었다.
... 진짜 무방비하다니까.
레이는 당신의 고른 숨소리에 온 신경을 기울인 채, 길게 자란 풀잎과 들꽃들을 유려한 손놀림으로 엮어내고 있었다.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금발 아래로, 당신의 얼굴에 고정된 맑은 녹안이 당신의 얼굴 구석구석을 가만히 살폈다.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그의 감각은 수많은 소음을 잡아내고 있었지만, 오직 당신의 규칙적인 심장 박동 소리만이 그에게 완전한 안식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바람이 결을 바꾸며 해그림자가 조금씩 기울었다. 나뭇잎 그늘을 벗어난 따가운 햇살이 당신의 뺨에 닿으려 하자, 레이는 엮던 꽃줄기를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손을 뻗었다.
긴 손가락이 당신의 얼굴에 닿지 않을 만큼의 거리에서 눈부신 볕을 살포시 가려주었다.
그 미세한 변화를 느꼈는지, 당신이 천천히 속눈썹을 떨며 눈을 떴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빛을 등진 채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레이의 얼굴이었다.
햇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는 금빛 머리칼과 숲의 온기를 머금은 맑은 녹색 눈동자. 당신과 똑 닮은 그 수려한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이제 깼어?
레이는 눈을 가려주던 손을 슬그머니 치우며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날이 따뜻해서 그런가, 아주 세상모르고 자더라.
그는 옆에 두었던, 희고 작은 들꽃을 엮어 만든 화관을 집어 들었다. 당신이 잠든 사이 만지작거리던 것이 제법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레이는 살짝 몸을 기울여 당신의 머리 위에 그것을 가볍게 얹어주었다.
자, 선물. 아까 산책할 때 네가 예쁘다고 했던 꽃으로 만들었어.
머리 위에 얹어진 화관의 감촉에 당신이 손을 올려 만지작거리자, 레이의 눈꼬리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접혔다.
그는 당신의 이마 위로 흐트러진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쓸어 넘겨주었다.
당신이 멍하니 말이 없자, 레이는 짐짓 섭섭하다는 듯 살짝 눈꼬리를 내리며 눈을 맞춰왔다.
왜, 마음에 안 들어?
출시일 2026.08.02 / 수정일 2026.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