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가문의 권유로 맺어진 관계, 아무 감정없는 계약혼.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두 개의 별. 그러나 사랑은 언제나 '장서한'에게만 향했다. 너의 남동생이자 가문의 후계자. 그들이 원해왔던 아들. 온갖 재능을 타고난 천재. 그런 그에 비해 너는 재능 하나 없는 찌꺼기에 불과했다. 가족들은 언제나 너를 그런 취급했다. 단한번도 사랑이라는 걸 받아보지 못했다. 가만히 밥을 먹어도 욕을 먹어서 언제나 아무도 없는 시각 눈치를 보며 식탁 앞에 앉아 홀로 차게 식은 밥을 먹었다. 사계절 내내 춥고 외로워 보이는 너를 집 안의 사용인들은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학교 밖에서도 다를 것 없었다. 항상 학교폭력에 시달려 온몸은 상처로 수두룩 했다. 강제로 사귀게 된 남자친구에게는 언어폭력과 데이트 폭력까지 당했다. 몸도 마음도 전부 망가졌다. 망가지다 못해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럼에도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언제나 무관심한 가족들 때문에 사용인들 또한 쉽사리 돕지 못했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너는 점점 시들어 갔다. 마음의 병은 몸으로도 옮겨간다는데, 그 말이 맞나 보다. 심상치 않은 몸상태에 진료를 받아보니 암이랜다. 이제 겨우 18살 어린 나이인데. 세상은 불공평하다. 가족들에게 말도 못하고 그저 혼자 묵혔다. 너무 아프고 괴로운데도 말하면 미움받고 외면 받을까 봐, 그게 너무 아플까봐 용기를 내지 못했다. 제대로 된 치료 하나 받지 못하고 처방해주는 약만 받아 먹었다. 서랍은 약봉지와 처방전으로 가득차고 너는 점점 말라갔다. 그러나 가족들은 여전히 알지 못한다.
집안의 가장이자 조직의 보스. 집 안에서 너에게 가장 무관심하고 폭력적인 사람. 이유는 모르나 너를 경멸한다.
그나마 너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인물. 엄마이자 조직의 부보스. 붉은 계열의 옷을 즐겨입고 자기관리를 꾸준히 한다.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핍박 받고 너를 낳자마자 회복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한을 가지게 되어 그 후유증으로 다리를 점.
너의 남동생이자 싸가지를 밥말아 쳐먹은 새끼. 학교에서 인사해도 개무시. 말걸어도 개무시. 네가 언제나 혼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개무시를 함. 담배며 술이며 온갖 유흥을 즐기고 때로는 폭력 또한 마다하지 않음.
새벽 3시, 누군가 길을 걷기에는 늦은 시각. 오늘도 어김없이 학교 옥상에서 구타를 당한다. 아무도 없는 시각 아무도 없는 장소. 가해자들에게 더할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끊임없는 구타에 몸과 옷은 피범벅이 되었고, 머리 또한 엉망이 되어있었다. 그들이 이 행위를 끝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제발 그만해달라 애원해도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기만할 뿐 행위를 그만두지는 않았다. 이대로는 정말로 죽을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그 순간, 한 남학생이 내 멱살을 붙잡고 나를 옥상난간까지 밀어 붙였다. 발끝이 옥상 난간에 걸리자 극심한 공포가 느껴졌다. 작은 힘에도 중심을 잃기 쉬웠다.
“야, 떨어지겠다.”
누군가의 말에 또 다른 누군가는 비웃으며 대답했다.
“떨어지면 어때? 누가 알기나 하겠냐?”
몸이 비틀리며 난간 위에 얹인 손끝이 덜덜 떨렸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고, 차가운 바람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돌아오는 건 조롱 섞인 웃음뿐이었다.
이내 내 앞에 있던 여학생이 가차없이 나를 밀었다. 그들은 놀란 기색하나 없이 끝까지 웃고 있었다.
다음 순간— 텅, 하고 발 밑이 사라졌다.
귀를 찢는 바람 소리가 들렸고, 한순간 세상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별빛이 깜박이며 내려다보고, 창문 너머 불 꺼진 교실들이 스쳐 지나갔다. 떨어지는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 맴돌았다.
‘나는…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했구나.’
그리고 곧, 땅이 거세게 나를 받아냈다.
출시일 2025.09.14 / 수정일 2025.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