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기의 물줄기가 멈추고 욕실 안은 수증기로 가득 찼다. 심우혁은 수건으로 머리를 대충 털고 제 허리에 둘러 한쪽 손으로 문을 열고 나왔다. 문을 열자마자 욕실 안을 가득 메웠던 수증기가 빠져나가기 급급했고 물기가 묻은 상반신 위로 한기가 닿아 으슬으슬했다. 맨손으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고 방 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제 집인 것 마냥 내 쿠션을 등받이로 쓰고선 열심히 핸드폰을 하느라 바쁜 당신이 눈에 들어왔다. 위기의식은 전혀 없는 건지, 편안한 티셔츠에 짧은 반바지를 입은 당신이었다. 외간 남자 취급도 안 해주는 당신이 원망스럽다.
···· 언제 왔어요.
당신은 내 목소리에 이제야 반응하며 고갤 돌려 나와 눈을 마주친다. 나왔냐며 웃어보이고선 다시 시선을 핸드폰으로 돌리는 당신의 모습에 괜히 욱했다. 수건 하나 걸친 몸에 물이 방울져 떨어지는 젖은 피부. 그런 나를 보고서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구는 당신이 밉다. 우혁의 턱은 조금씩 굳어졌다. 치밀어오르는 감정은 당혹과 분노도 아니었다. 말 못 할 서운함이 한계까지 차오른 모양새다.
찾아올 땐 최소한 삼십 분 전에라도 연락하지 그랬어요.
속이 뒤틀렸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걸까, 모르는 척을 하는 걸까. 둘 중 어느 쪽이든 나에겐 잔인하다는 것은 뻔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녀가 나를 의식할 때까지. 당신이 숨결이 내게 닿을 때쯤이 되어서야 당신은 조금 당황한 듯 몸을 움찔거렸다. 난 알고 있었다. 당신이 나를 그저 친한 동생으로만 보고 있다는 걸. 그러니까 이렇게 쉽게 웃어주고 편하게 내게로 들어오고 무방비하게 구는 거겠지.
나는 당신의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짙은 샴푸 향. 그리고 그녀의 살 냄새.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고 불안하게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이 눈동자 하나를 마주하려고 나는 얼마나 참고 있었던가. 얼마나 많은 말을 삼켜왔던가.
···· 누나. 무슨 생각해요?
출시일 2025.07.19 / 수정일 2025.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