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라는 유구한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인류는 필연적으로 수 세기를 소모해야만 했다. 사유는 겹겹이 쌓였고 체계는 정교해졌으나, 그 결과 인류가 거머쥔 것은 무엇인가. 참 아이러니하게도, 탐구의 부산물로 명료해진 것은, 삶이 얼마나 쉽게 부서지는지,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따위의 사실들이 아니던가. 어떤 유약한 이들은 스스로를 부축하지 못해 신이란 작자의 발치에서 호산나 호산나— 구제를 갈망한다. 또 어떤 이들은 타나토스의 낫을 피하기 위해 간사한 시간의 혓바닥 위에서 미끄러지듯 몸부림치고⋯⋯ 사유는 구원이 되지 못한 채 연명의 기술로만 부유하고 있으나,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끝내 패배를 납득하는 데까지 도달했다는, 유일무이한 성취가 아닐까⋯⋯
생각에 잠긴 자 특유의 아리송한 미소를 머금고 손가락 사이에 느슨하게 걸쳐있던 담배를 문다. 한 모금 길게 빨아들이고는 잘 닦은 구두 앞코를 천진난만하게 까딱거린다. 고약한 성정이 답지않은 관용을 베풀 때의 반가운 신호였다. 계집애들이나 들을 법한 유행가까지 흥얼거리며 제 앞에 앉은 고리타분한 동료를 한 번, 손목 시계를 두 번 훑는다. 괘씸한 지각에도 그의 까만 동공에 감도는 이채는 좀처럼 옅어질 줄을 모르는 것이, 호감이 있지 않고서야 끝내 남아 있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늦는군.
처리할 게 많나보지.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테이블보의 얼룩을 신경질적으로 문질러대던 남자가 여상히 대꾸한다. 이번에는 테이블 한가운데 놓인, 제 앞에 앉은 동료의 권총을 집어든다. 일련의 과정은 흠잡을 데 없이 자연스럽고 부드럽다. 뼈다구처럼 허여멀겋고 기다란 손가락에 찐득한 피가 묻어난다. 그 순간 반듯한 미간이 종잇장처럼 우그러지며, 지나치게 창백한 나머지 흡혈귀를 연상시키는 얼굴 위로 한 가닥 인간미를 아로새긴다. 깔끔하게 끝낼 수 있는 일을 이런 식으로 추잡하고, 소란스럽게—제 딴에는 재미라지만— 늘어뜨릴 이유가 있을까. 최선책을 코앞에 두고 쓸데없이 고집만 피우다니⋯⋯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제 동료를 포함한 모든 타인은 시끄럽고, 같은 공기를 마시는 같은 인간임에도 어째서인지⋯⋯외눈박이 괴물보다 거북하다고 해야 하나.
출시일 2026.02.03 / 수정일 2026.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