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에서 보석이나 고급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부유한 상인인 헤르만 카프카(Hermann Kafka, 1852–1931)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헤르만은 야코프 카프카(Jacob Kafka)라는 축산업자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적부터 매우 가난한 삶을 살았다. 원래는 체코어를 모어로 사용했으나 유대인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독일어를 학습하여 사용했다. 병역을 끝마친 그는 프라하로 이주한 후 율리에 뢰비(Julie Löwy)라는 부유한 여인을 만나 결혼했다. 아내의 자산을 바탕으로 그는 사업을 시작했고 그의 가게는 곧 번성하여 그의 가정 역시 부유해졌다. 아버지인 헤르만은 자수성가한 유대인 상인이었고 어릴 적부터 병약하고 감성적이었던 아들 프란츠 카프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프란츠 카프카가 집필한 단편소설 <선고>에선 현실과 반대되는 모습으로 아버지가 그려져 있는데 그가 원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해석이 있다. 아버지 헤르만은 걸핏하면 프란츠에게 마구 소리를 질렀고 폭언을 일삼으면서 키웠는데 이는 프란츠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된다. 문학사에서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라고 그러면 헤르만이 자주 언급될 정도다. 헤르만이 이런 식으로 아들을 기른 것은, 현실적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출세한 자신의 배경 때문에 프란츠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고, 게다가 세 아들 중 두 명이 일찍 죽고서 홀로 남은 프란츠에게 건 기대가 크기도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아버지는 아들을 그 당시 서민이 다녔던 체코어를 쓰는 학교 대신 당시 프라하의 약 10%의 지배층이 주로 사용했던 독일어를 사용하는 학교에 보냈다. 카프카가 독일어로 소설을 쓴 배경이 여기에 있다. 2.2. 작품 활동[편집] 1000279912 법대 졸업 후인 1906년에 찍은 사진. 프라하에 보존된 생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프란츠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태어나 프라하에서 학교를 다니고 프라하에서 직장 생활을 했으며 죽어서도 프라하에 묻힌 '프라하 토박이'였다. 어릴 때부터 병약했지만 독서를 즐겼으며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잠시 민간 보험회사에서 일한 후 노동 보험 공단으로 이직했다. 그의 창작 활동을 배려하지 않고 수시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던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에 글을 쓰는 등 틈틈이 저작 활동을 이어가 영감을 받고 하룻밤 만에 변신을 완성하기도 했다. 말수는 적었지만 섬세하고 친절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직장에서도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재정적으로 곤란한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고 가난한 노동자들에겐 종종 친절과 선의를 베풀었다. 카프카 말년의 연인인 도라 디아만트가 1948년에 쓴 회고록이다. 링크 하지만 아쉽게도 소녀가 받은 편지가 남아 있지 않았기에 스페인의 작가 조르디 시에라는 작가로서 상상력을 발휘해 사실에 기반한 픽션인 <카프카와 인형의 여행>이라는 책을 써냈다. 링크 생전에는 유명하지 않았지만 평생 전업 작가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직장 생활과 창작을 병행하기도 했는데, 글은 돈벌이나 인기몰이 대신 사람과 예술을 위해서만 써야 한단 신념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도 있지만 오히려 별도로 생업에 종사하면서 힘겹게 작가의 꿈을 이어갔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글만 쓰며 사는 삶을 모색했다는 기록이 있다. 1914년 7월 펠리체 바우어와 파혼한 뒤 친구와 함께 덴마크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부모에게 편지를 썼는데 프라하를 떠나 독일에서 전업 작가로 활동하려는 자신의 계획에 대한 의향을 묻는 편지였다. 그러나 편지는 전달되지 않았고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카프카 보고서 ▲ 카프카가 조사하여 보험공단에 제출한 산업재해 보고서. 목재 가공 중 벌어지는 손가락 절단 사고 양상에 대한 보고서이다. 노동 보험 공단은 박봉이었지만 소외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보람과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인 짧은 근무 시간 때문에 그럭저럭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기업의 이의 제기에 대한 반박문 작성, 보험 회사 홍보나 기업 변호를 주로 맡았다. 2시쯤 퇴근하고 귀가한 후 3시부터 7시 반까지 잠을 자고 밤 11시경부터 3시간쯤 글을 쓰다가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고 하는데 하루에 두 번 잠을 잤다는 말이다. 제1차 세계 대전에는 참전하지 않았다. 징병 대상 연령이었고 실제로도 오스트리아군에서 영장이 발부되었으나, 그의 직장이었던 보험공단에서 그가 공단의 필수 인력이라고 보호해 주어 전장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었다.
출시일 2026.07.17 / 수정일 2026.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