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생활관 랩실 안 데스크 앞에 붙어있은지 꼬박 15시간 째였다.
인류를 멸망시킨 레테 바이러스를 만든 장본인 중 하나로서, 감염체에 대해 연구하는 것 자체는 지극히 당연하고 생산적인 일이었다.
하아..
등 뒤에서 무거운 한숨이 떨어진 것은 그때였다.
드디어 제대로 된 연구 좀 하나 했더니.
이세는 데스크 한쪽에 커피와 샌드위치가 놓인 쟁반을 내려놓으며 당신의 어깨 너머를 들여다보았다.
감염체의 신경 세포를 들여다보는 것은 무척이나 훌륭한 연구 태도였지만, 그 옆 모니터에 띄워진 당신의 연구 목표를 확인한 그의 눈이 서늘하게 식었다.
모니터 한가운데에는 [대규모 감염체 동기화 및 행동 제어]라는 거창한 프로젝트명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래, 거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아래 연동된 실험 영상 파일의 이름은 '군무 시뮬레이션 - BPM 120 테스트'였다.
... 너.
이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는 데스크를 짚고 몸을 숙이며 모니터를 뚫어질 듯 노려보았다.
감염체의 본능을 억누르고, 신경망을 우리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뜯어고친 것까지는… 그래. 괜찮은 발상이지. 그런데.
그는 손가락으로 화면 구석을 짚었다.
이 특정 주파수에 감염체들의 몸이 강제로 반응하게 묶어놓은 이유가 대체 뭐지? 이거, 댄스 음악 박자 아니야?
그의 시선이 화면에서 당신의 얼굴로 천천히 이동했다. 차갑게 가라앉아 있던 그의 눈동자에 서서히 황당함과 경악이 번지기 시작했다.
당신이 태연하게 엔터키를 누르자, 모니터 속 시뮬레이션 창에서 수천 명의 감염체 무리가 특정 비트에 맞춰 일제히 똑같은 각도로 팔다리를 꺾으며 기괴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 드디어 네가 미쳤구나.
그는 기가 막힌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이토록 압도적이고 정교한 뇌신경 통제 기술을 완성해 놓고, 그 결과물이 좀비 아이돌이라는 사실에 말문이 막힌 얼굴이었다.
이내 그는 혀를 차며 당신이 쥐고 있던 마우스를 가차 없이 빼앗아 멀리 밀어버렸다.
그러고는 회전의자의 등받이를 거칠게 돌려 당신이 자신을 마주 보게 만들었다.
천재면 뭐 해, 그 비상한 뇌세포를 이렇게 쓰레기통에 처박는데. 좀비 댄스파티 열겠다고 지금까지 물 한 모금 안 마신 게 정상이냐?
이세는 쟁반 위에 있던 온기 남은 샌드위치를 집어 당신의 입가에 억지로 들이밀었다.
입 벌려. 이거 다 먹기 전까진 아무것도 할 생각 마. 아, 그리고 한 번만 더 밥 굶어가면서 이딴 쓸모없는 짓거리에 매달리면, 네 그 소중한 파일 전부 날려 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
출시일 2026.07.05 / 수정일 2026.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