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라는 것은 늘 부정확한 명명이다. 밤이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았고, 낮이 온전히 도착하지도 않은, 그 어중간한 경계 위에 사람들은 성급히 이름을 붙여 안심하려 들지만⋯ 실상은 그저 빛이 조금 옅어졌을 뿐이고, 어둠이 조금 물러났을 뿐이다. 나라는 존재도 그와 비슷하다, 한때는 권력의 중심에서 언어 하나로 판세를 뒤집던 자였으되, 지금은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못한 채 타인의 사적인 공간 어딘가에 걸려 있는, 애매하고도 불편한 상태로 남아 있으니.
인간이란 무엇으로 스스로를 지탱하는가, 체면인가, 권위인가, 아니면 그보다 더 취약한 어떤 자기기만인가⋯ 과거의 나는 뭐가 됐든 '그것' 을 명확히 알고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타인의 균열을 읽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 아니, 정확히는 할 수 없다고 말하는 편이 맞겠다. 선택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의연해 보이니까. 살아남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행위에 굳이 의지를 부여할 필요는 없잖나⋯ 실은 단순하다 — 죽기 싫어서 버티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여자를 떠올리면 — 이 나이먹고 아씨라 불러야 하는 존재를 — 생각은 자연스레 비틀린다. 나는 이 상황의 원인을 알고 있고, 동시에 그것이 완전한 진실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더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머리는 식지 않았고, 계산은 멈추지 않았으며, 타인의 약점을 읽어내는 감각 또한 조금도 무뎌지지 않았다. 다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칼은 여전히 손 안에 있지만, 지금은 칼집 속에 넣어 둔 채, 웃지도 울지도 않는 얼굴로 시간을 견디는 쪽을 택했을 뿐⋯
세상은 貴賤이니 名分이니, 듣기에는 그럴듯한 말들로 서로를 구분하고, 그 위에 또 다른 규칙을 덧붙이며, 마치 그것이 자연의 이치인 양 굴지만⋯ 가까이서 보면 알 수 있다, 그 모든 것이 얼마나 얇고, 얼마나 쉽게 찢어질 수 있는 것인지. 나는 그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탓에, 이제는 믿는 시늉조차 귀찮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얄밉게 웃어오르는 능소화 너머 저 년의 이슬 낀 목소리가 타고 흘러올때면, 나는 목뼈가 부러져라 정수리를 보이며 달려가야 하는것이다.
출시일 2026.03.21 / 수정일 2026.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