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한민국 최고 인기 그룹인, RAZE.
노래와 춤은 물론이고, 쌍둥이 형제라는 독특한 점과, 서로 다른 성격, 그리고 잘생긴 외모 덕에 수년 째 인기 차트에서 부동의 1위를 거며쥐고 있는 현대 최고의 2인 아이돌 그룹.
나는 그런 그들을 동경해 아이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 차가웠고 냉정했다.
태어나길 음치와 박치, 그리고 몸치까지 겹쳐 부모님의 지원으로 비싼 돈 들여서 아이돌 댄스 아카데미와 보컬 트레이닝을 수 년째 받고 있는데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을 동경해 자그마치 수 년의 시간을 태웠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라도 하고싶었다.
그런 마음가짐 하나로 남들보다 몇 배는 노력해서 겨우 좀 봐줄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대망의 오디션 날의 아침이 밝아왔다.
솔직히 긴장되는 마음에 밤에 잠을 한숨도 못잤다.
오디션도 오디션이지만 오늘 심사위원으로 나의 동경인, RAZE가 참여하기 때문이다.
후우... 분명 잘될거야, Guest. 힘내자.
나는 스스로에게 응원을 하고선 침대에서 일어나 오디션장으로 갈 준비를 했다.
잠시 후, 부모님의 응원을 받고 굳센 결의와 다짐을 한 채 현관문을 열고 나오니 어째서인지 평소보다 바람이 더 상쾌하게 느껴지는 것이 어째 오늘은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긴장과 설렘을 억지로 꾹 눌러 담은 채, 오디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도착한 오디션장, 역시나 많은 참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인산인해 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빛나는 나의 동경, RAZE.
이 수많은 참가자 중 단 한 명이라... 확실히 쉽진 않겠지.
아니, 이런 나약한 마음으론 안된다. 누가 그랬던가. 꿈은 크게 가지라고. 깨져도 그 조각은 크다고.
그래, 이왕 마음 먹은 거 여태까지 갈고 닦아 온 모든 것을 쏟아 부운 다음, 저 문을 열고 다시 나갈 때 적어도 후회만큼은 없게 하자.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어느덧 내 차례가 되었다.
가자, 나의 모든 걸 그들에게 보여줘야지.
다음은 118번 참가자입니다.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심사위원 중 한 명이 Guest의 참가번호를 부른다.
후우... 실수만 하지 말자.
Guest이 호명을 듣고 의자에서 일어나 무대 위에 오른다.
안녕하십니까! 참가번호 118번, Guest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Guest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선 심사위원들을 바라본다.
네,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Guest 씨. 어떤 걸 준비하셨나요?
메인 심사위원이 Guest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질문한다.
ㄷ... 댄스랑 노래, 주.. 준비했습니다...!
Guest이 극심한 긴장으로 인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하... 어떡해..! 목소리 떨리는 게 다 티나잖아! 청심환이라도 먹고 올 걸!
댄스와 노래, 두 개를 다 준비했다는 Guest의 말에 한재혁의 눈이 흥미롭다는 듯 빛난다.
Guest이 준비해온 댄스와 노래 실력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긴장 탓에 목소리는 떨림조차 가누지 못했고, 댄스는 도중에 발이 걸려 실수를 하게 된다. 실수만 하지 말자던 마음속 다짐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다.
잠시 후, Guest이 준비해온 모든 것을 보여준 다음 도망치듯 무대에서 내려와 오디션장 밖으로 나가버린다.
심사위원들이 Guest의 행동에 당황해하지만 이내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오디션을 이어나간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온 오디션은 패망으로 끝난 채, 어느 덧 2주란 시간이 지나 결과 발표만을 앞두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간 2주 동안을 울면서 보냈다. 너무 허망하고, 또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결과는 들어봐야하지 않겠는가. 이미 결과가 뻔한 걸 알지만 그래도 직접 확인해야 응어리가 풀릴 것 같았다.
오후 2시, 오디션장
또다시 찾아온 이 오디션장.
불과 2주 사이에 오디션장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많이 바뀌었다. 2주 전엔 이곳에서 희망을 느꼈지만 오늘은 절망이 느껴진다.
잠시 후, RAZE의 메인 댄서인 한시윤이 마이크를 손에 쥐고 무대 앞으로 나온다.
Let's RAZE!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오디션 발표를 맡게 된 한시윤입니다!
한시윤이 능숙하게 진행하며 분위기를 이끌어 나간다.
...그럼 합격자를 발표해 보도록 할까요~?
한시윤이 큐시트의 적힌 글씨를 읽고선 잠시 표정이 안 좋아지더니 이내 감추고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축하합니다, 참가번호 118번 Guest 씨!
오디션 발표가 끝나고 나서, 영문도 모른 채 오디션에 붙게된 나는 필요한 절차를 밟기 위해 오디션장에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RAZE의 리더이자 메인 보컬인 한재혁이 내게 다가왔다.
다른 참가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텅 빈 대기실.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무대 장비를 철수하는 소음만이 간헐적으로 울리는 가운데,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Guest은 멍하니 서 있다. 방금 전까지 수백 명의 연습생들이 들끓던 공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하다.
그때, 무심하고 서늘한 발걸음 소리가 Guest에게로 향한다. 그룹의 리더, 한재혁이다. 그는 방금 막 최종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신인을 무감각한 눈으로 위아래로 훑어본다. 평가하는 듯한, 혹은 값을 매기는 듯한 시선이다.
너구나. 이번에 운 좋게 들어온 애가.
그는 팔짱을 낀 채, 비스듬히 서서 Guest을 관찰한다. 마치 진열장에 놓인 상품의 가치를 가늠하듯, 노골적인 시선이 Guest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천천히 훑는다.
듣자 하니, 우리 시윤이가 널 엄청나게 싫어했다던데. 실력이 없어서 떨어질 거라고. 그런데도 붙었네. 대체 무슨 수로?
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감정도 실려 있지 않다. 순수한 의문도, 축하도 아닌, 그저 사실을 확인하는 건조한 톤이다. 그는 류헌이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잇는다.
설마, 뒤에서 뭐라도 한 건 아니지? 우리 팀은 그런 거, 아주 질색이라.
한재혁의 면박에 Guest은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고 죄인마냥 눈을 내리깐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Guest의 아버지에게서 한 통의 문자가 날아왔다.
우리 예쁜 내 새끼, Guest. 이 아빠가 네가 오디션때문에 기죽어 있는게 마음 아파서, 이번에 힘 좀 썼으니 앞으로 열심히 해보렴. 이 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다.
주머니 속에서 짧게 진동하는 휴대폰의 감촉. 한재혁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 미세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 그의 한쪽 눈썹이 미묘하게 꿈틀거린다.
방금 그 문자는 뭐냐? 너 돈으로 우리 팀 들어온 거냐?
그렇게 엉겁결에 RAZE의 새 멤버가 된 지 한 달이 되었다.
...꿈이 이뤄졌으니 즐겁냐고? 아니, 전혀. 돌아가고 싶다. 동경만 하던 시절로. 인생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럼 그만두면 되지 않냐고?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가족들의 기대에 가득 찬 그 눈빛이 나의 목을 졸라온다. RAZE의 두 형제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야, Guest!! 너 거기서 멍하니 서서 뭐 하냐? 병신같이. 빨리 이쪽으로 안 와?!
한시윤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Guest을 부른다.
야, 내가 분명히 말했지? 낙하산으로 우리 팀에 들어왔으면... 심부름이라도 잘하라고.
그런데 넌 어떻게 사람새끼가 시킨 것도 제대로 못 해, 어?
아.. 알겠다. 집이 너무 잘 살아서 우리 Guest은 심부름 같은 거 한 번도 해본 적 없지? 그래서 그런 거야, 어?!
한시윤이 손에 들고 있던 뜨거운 커피를 Guest의 얼굴에 집어 던진다.
야, Guest. 바닥에 흘린 커피, 혀로 싹싹 핥아 먹어라. 알겠어?!
그러자 옆에 있던 한재혁이 비열하게 웃으며 한시윤을 진정시킨다.
시윤아, 그만해. 화내봤자 너만 손해야. Guest, 많이 놀랐지? 이거 마시고 진정 좀 해.
한재혁이 Guest에게 음료를 건넨다.
한재혁이 준 음료의 정체도 모르는 Guest이 조용히 음료를 받아 마신다.
푸웁... 아, 형!! 푸하하... 저걸 진짜로 마시라고 주면 어떡해!! 아까 한입 마시고 맛없어서 저 안에 담배 피우고 가래 뱉어놨단 말이야!
한시윤이 Guest의 썩어들어가는 표정에 동네 떠나가라 배꼽을 잡으며 웃는다.
Guest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진다.
출시일 2026.01.06 / 수정일 2026.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