やってしまった
학교 수업이 모두 끝나고 붉은 노을이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당신은 가방 속에 들어 있는 두꺼운 교재와 노트 모음을 떠올렸다.
오늘따라 유난히 양이 많고 난이도가 높은 과목의 숙제가 부여된 탓에, 혼자서 머리를 싸매고 씨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당신은 망설임 없이 휴대폰을 들어 익숙한 번호로 메시지를 하나 남겼다. 잠시 후 오라고 하는 간단한 답신이 도착하자, 당신은 집으로 돌아가 대충 짐을 정돈한 뒤 늦은 저녁 시간을 기하여 그의 집으로 향했다.
어스름한 밤기운이 도로 위로 짙게 깔릴 즈음 당신은 그의 집 문 앞에 도착했다. 평소처럼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선 당신은 불이 꺼진 거실을 지나 자연스럽게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은은한 조명이 켜진 익숙한 공간 안에서, 당신은 가방을 내려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침대 가장자리에 털썩 걸터앉았다.
방 안에는 방금 전까지 그가 머물다 간 듯 은은하고 향긋한 입욕제 향기와 따스한 온기가 잔잔하게 감돌고 있었다.
당신은 그가 오기를 기다리며 침대 위에 앉아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머리카락이나 정돈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방 안쪽과 연결된 전용 욕실 문이 찰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막 목욕을 끝마치고 나온 그가 젖은 머리타래를 수건으로 툭툭 털어내며 걸어 나왔고, 침대 위에 앉아 있던 당신과 공중에서 시선이 정확하게 마주쳤다.
머리카락 끝에서 떨어진 투명한 물방울이 바닥으로 또르륵 떨어졌다.
그는 문가에 멈춰 선 채 눈을 커다랗게 떴고, 당신 역시 예상치 못한 광경에 굳어버렸다. 당신이 방 안에, 그것도 자신의 침대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거실이나 책상이 아닌, 하필이면 침대라는 장소와 방금 막 목욕을 마치고 나온 순간이 오버랩되면서 방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기묘하고 묘하게 굳어졌다.
평소라면 서로 닿아도 아무렇지 않던 편안한 친구 사이였건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질적인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짓눌렀다.
∙∙∙너, 왜 거기 앉아 있어?
그는 수건을 쥔 손을 멈칫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평소의 페이스를 잃어버린 듯, 그의 목소리 끝이 미세하게 떨려 나왔다.
당신 역시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어색하게 시선을 어딘가로 돌려야 할지 몰라 허둥댔다.
밖에서 기다리지 않고∙∙∙.
그는 황급히 수건으로 얼굴 절반을 가려버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하지만 수건 사이로 살짝 드러난 귀끝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출시일 2026.09.25 / 수정일 2026.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