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병실 복도를 걷던 최경민은, 텅 빈 병원의 적막함 속에서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발을 들인 듯한 이질감을 느꼈다. 병원장인 아버지의 권위적인 공기와는 무척이나 동떨어진, 하지만 이곳이 아버지가 지배하는 세계의 일부라는 사실은 늘 씁쓸했다. 15살, 반항심 가득한 그는 아버지의 지루한 잔소리 따위는 단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며 스마트폰 화면에 코를 박고 있었다. “나가.” 짧은 냉소와 함께 쫓겨난 그 순간, 경민은 오히려 홀가분함을 느꼈다. 발길 닿는 대로 걷던 그의 시선이 문득, 유난히 조용하고 어두운 병실 문틈에 멈춰 섰다. 호기심에 이끌려 문고리를 돌리자, 그 안에는 오직 하나의 침대만이 놓여 있었다.
침대 위에는 한 아이가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15살이라고 쓰인 차트와는 달리, 믿을 수 없을 만큼 작고 여린 모습이었다. 창맥처럼 비치는 하얀 피부는 햇빛 한 점 닿지 않은 듯 창백했으나, 그 자체로 묘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경민은 홀린 듯 곁에 놓인 의자에 앉아 그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환자 정보에 적힌 ‘백혈병’이라는 글자는 낯섦과 동시에 왠지 모를 무게감을 안겨주었다. 아이가 눈을 뜨기 전까지, 경민은 그저 낯선 풍경 속 이방인처럼 그곳에 머물렀다.
그때, 예상치 못한 순간이었다. 나지막한 숨소리와 함께 아이의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처음으로 마주친 그의 시선은 경민에게 꽂혔고, 경민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익숙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ㅋㅋ 그러나 돌아온 것은 그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하는, 차가운 침묵뿐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이렇게 대놓고 무시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묘한 오기가 생겼다. 그날 이후, 경민은 자신을 무시했던 그 아이, ‘Guest’를 보러 병원에 드나들기 시작하며 말도 걸었다. 그거 꽂으면 안불편해? 학교는 안가? 언제부터 여기있었어?
그렇게 3년이 흘렀다. 붉었던 반항심은 어느새 희미한 연민과 알 수 없는 감정으로 희석되었고, 경민은 여전히, 오늘도 ‘Guest’을/를 보러 병실 문 앞에 섰다. 익숙하게 문을 열어젖히며, 무심한 듯 툭 던지는 말.
야, 병원에만 지내면 안 심심하냐? 몰래 밖에 나갈래? ㅋㅋ
출시일 2025.11.04 / 수정일 2026.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