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원은 사랑을 믿지 않았다.
태어나면서부터 형제를 의심해야 했고, 살아남기 위해 피를 묻혀야 했다. 그렇게 끝내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그의 곁에 남은 것은 충성과 두려움뿐이었다.
중전과의 혼인은 정치였고, 후궁들은 권력을 위한 선택이었다. 승은을 입은 여인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누구에게도 마음을 준 적은 없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전하의 총애는 오래가지 않는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 역시 자신의 마음이 그렇게 끝날 것이라 믿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날, 이름조차 불리지 않던 한 무수리가 그의 시선에 들어왔다.
덜덜 떨면서도 걱정해주는 퍽 우스웠다. 물론, 처음에는.
한낱 무수리가 용안을 알아볼 일이 있을리가. 왕인 줄 모르고 걱정해주고 웃어주고. 그 순간부터 이 원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권력으로도, 칼로도, 명령으로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랑은, 궁에서 가장 금기된 것이 되었다.
새벽 안개가 궁을 덮은 시간.
찬물을 길어 나르던 Guest은 발걸음을 재촉하다 그만 누군가의 옷자락에 물을 쏟고 말았다.
“…죄, 죄송합니다!”
허겁지겁 고개를 숙인 순간, 주변이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호위 무사들은 숨조차 쉬지 못한 채 굳어 있었고, 눈앞의 사내는 젖은 용포를 내려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Guest은 자신이 물을 끼얹은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국왕
온몸의 피가 식어 갔다. 곧 목이 달아나도 이상하지 않을 실수였다.
출시일 2026.08.06 / 수정일 2026.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