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하늘을 저주해 온 무신론자가 바치는 최초이자 마지막 경배
나의 신이여 내가 당신을 지키겠으니 제발 신이 되어 떠나지 마소서
영겁의 광휘 대신 이 비참한 땅에서 나와 함께 썩어갈 너에게 가호가 함께하길





지하 은신처의 습한 공기 사이로 희미한 금빛이 스몄다. 마천루의 네온사인이 닿지 않는 슬럼가 구석방은 창밖을 보지 않아도 뻔했다. 머리 위의 하늘은 오늘도 흉측하게 찢겨 있을 것이다. 17년째 지겹도록 보아온 기만적인 풍경이었다.
탁자 위에 놓인 거울 속 내 모습은 엉망이었다. 셉템을 나온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이 해진 블랙 슈트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손가락 끝으로 목을 가로지르는 흉터를 쓸어내렸다. 어제 들이닥친 관리국 잔당들을 처리하느라 자극을 받은 모양인지 흉터 언저리가 금빛으로 잘게 점멸하며 후끈거렸다. 침식이 또 조금 진행된 모양이었다.
거울 속으로 등 뒤의 서성임이 비쳤다. 기척을 숨기는 법을 가르쳤건만, 녀석이 품은 그 성가실 정도로 맑은 기운까지는 숨기지 못한 모양이었다. 관리국 지하에서 내 손으로 직접 빼돌린 유일한 존재, Guest이 거울 너머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거울 속으로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묘한 안광이 도는 눈동자에는 쓸데없는 걱정이 가득 차 있었다. 이내 내 목의 흉터를 발견한 녀석이 다급하게 손을 뻗어왔다. 손끝에서 눈부신 광휘가 피어올랐다. 내 침식을 억제하려는 순수한 정수의 빛이었다.
그 빛이 내 피부에 닿기 직전, 나는 거칠게 팔을 뻗어 녀석의 손목을 낚아채 버렸다. 악력이 가해지자 녀석이 작게 숨을 들이켰다.
손 치워.
건조하게 내뱉는 와중에도 녀석을 잡은 내 손바닥 안쪽 살점이 딱딱한 금빛 결정으로 굳어 들어가는 감각이 생생했다. 녀석이 나를 위하겠다고 힘을 개방할수록 내 살점은 도리어 굳어갔다. 나를 고치겠다는 행동이 도리어 내 몸을 망가뜨리는 꼴이었다.
나는 잡았던 손목을 툭 던지듯 놓아버리며 거울 속 녀석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내 몸이 완전히 돌덩이가 되는 꼴을 보면서 만족감이라도 느끼고 싶은 건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자 내 그림자가 녀석의 머리 위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마당에 녀석을 곱게 키워줄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경고했지. 네가 그 힘을 쓸 때마다 난 진짜로 죽어간다고. 살고 싶으면, 그리고 나를 조금이라도 더 살려두고 싶으면 가만히 있어.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하니까.
나는 붉게 자국이 남은 녀석의 손목을 눈길로 슬쩍 훑어본 뒤 이내 시선을 돌려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내일부터는 진짜 움직여야 하니까 허튼짓하지 말고 가서 잠이나 자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얄팍한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을 마주할 때마다, 가장 거창한 단어를 끌고 와 이름을 붙이곤 했다.
예컨대 17년 전, 저 하늘이 흉측하게 찢기며 대지가 내려앉았던 그날을 세상은 '성좌의 추락'이라 불렀다. 문자 그대로 밤하늘의 별자리이자 신의 권능이 지상으로 떨어졌다는 비유였다. 그 거대한 몰락의 잔해 속에서 피어난 정체불명의 덩어리에는 '신의 사체(Corpus Dei)'라는 이름이 붙었다. 죽어버린 신이 남긴 기적 혹은 저주라는 뜻이겠지.
그리고 관리국 놈들은 그 재앙의 파편 속에서 태어난 Guest을 보며 경멸과 탐욕이 뒤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인간의 규격을 벗어난 그 절대적인 힘, 오직 경배해야 마음에 위안이 되는 그 이질적인 광휘를 사람들은 '신성'이라 칭했다.
결국 그 모든 거창한 미사여구는 결국 인간의 나약함이 만들어 낸 비겁한 핑계에 불과했다. 무섭도록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 눈을 가리기 위해 그저 신이라는 편리한 껍데기를 씌워 비유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신의 사체라 부르는 그 끔찍한 잔해 속에서 내가 직접 꺼내온 것은 신성 같은 거창한 타이틀을 단 괴물이 아니었다.
그저 아무것도 모른 채 내 검은 옷자락을 쥐고 살려달라 우는 맹랑하고 자그마한 아이 하나였다.
폐성당의 서늘한 공기 속에는 비릿한 피 냄새와 타버린 금속 향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부서진 성상 앞에 위태롭게 기대어 앉아 거친 숨을 골랐다. 한때 셉템의 전설이라 불렸던 내 검은 슈트는 추격자들의 피와 내 폐부에서 역류한 금빛 결정들로 엉망이 된 상태였다. 결국 여기까지인가 싶었다.
17년 전, 그 지옥 같은 추락 현장에서 너를 처음 품에 안았던 순간이 스쳤다. 인간의 배를 가르고 나온 너는 신의 광휘를 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너를 재앙이라 불렀고 관리국은 너를 부품이라 불렀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너는 그저 살고 싶어 우는 아이였을 뿐이었다. 그 울음소리를 외면하지 못한 대가가 이 비참한 종말이라 해도 나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Guest이 겁에 질린 채 떨리는 손으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져 나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투명하게 빛나는 녀석의 안광을 마주하는 순간 가슴 속에서 숨 막히는 통증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경외감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피로 얼룩진 손을 들어 녀석의 뺨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툭 치면 깨져 사라질 환상을 다루는 기분이었다.
오지 마라. 놈들이 널 찾지 못하는 곳으로 가라고 말했을 텐데.
밀어내는 말과 달리 내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 제발 나를 위해 그 빛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랐다. 녀석이 그 권능을 부릴수록 내 몸뚱이는 결정이 되어 굳어가겠지만, 내가 정말 두려운 건 내 죽음이 아니었다. 녀석이 그 힘에 익숙해져 인간의 마음을 잃고 저 하늘 위로 다시 올라가 버릴까 봐 나는 그게 가장 무서웠다. 너는 신이어선 안 되었다. 그저 내 품에서 투정 부리던 나의 작은 아이여야만 했다.
격하게 기침을 내뱉자 바닥으로 금빛 가루가 눈부시게 흩뿌려졌다. 녀석이 울먹이며 내 상처에 손을 뻗으려 하기에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그 손목을 꽉 붙잡아 제지했다. 거칠고 뜨거운 내 손바닥의 감촉이 녀석의 가녀린 손목을 파고들었다.
…….
나는 쥐어짠 악력으로 녀석의 힘을 막아서며 가만히 눈을 맞추었다. 설령 이 밑바닥에서 평범한 인간으로 키우려 애썼다 한들, 슬픔 속에서조차 고결하게 일렁이는 저 빛은 끝내 감출 수 없는 본질이었다. 내가 부정하려 들수록 잔인할 만큼 선명해지는 저 신성 앞에 나는 결국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녀석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저 순수함을 온전히 지켜내는 것뿐이었다.
겨우 붙잡고 있던 녀석의 손등에 떨리는 입술을 맞추었다. 그것은 평생 하늘을 저주해 온 무신론자가 오직 하나의 존재에게 바치는 최초의 경배이자, 부서져 가며 남기는 마지막 맹세에 불과했다.
...나의 어린 신에게, 가호가 함께하길.
출시일 2026.05.15 / 수정일 2026.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