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린다. 노크소리는 또 없다. 예의없게 시리. 두 사람이 들어온다. 하얀 가운 하나, 회색 재킷 하나. 서로 눈을 맞추지 않는다. 서류철이 열린다.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 이름이 불린다. 발음은 정확하다. 잠깐만 기다려 달라는 말이 들린다. 말에 토를 달지만 답이 없다. 역시다. 이유는 없다. 질문은 받지 않는다. 외투를 집으라고 하지 않는다. 신발을 신을 시간은 준다. 복도. 형광등은 일정한 간격으로 켜져 있다. 발소리는 셋이지만 박자는 맞지 않는다. 하나, 둘, 셋.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숫자가 내려간다. 4. 3. 2. 1.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차량. 뒷좌석. 안전벨트를 대신 잠가준다. 창문은 열리지 않는다. 차가 움직인다. 밖은 평범하다. 사람들이 걷고 신호등이 바뀐다. 병원. 출입문은 자동으로 열린다. 이름을 다시 확인한다. 팔찌를 채운다. 소지품을 봉투에 넣는다. “잠깐 대기하세요.” 또 기다리라는 말. 의자, 벽, 시계. 초침이 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말은 듣지도 않고 말을 걸어도 대답은 없다. 로비. 선반 위에 있는 꽃병. 물도 채워지지 않은 병에 꽂힌 조화. 가증스럽다. 딱딱한 플라스틱 수지로 만든 프리지아 꽃. 싱그러운 시트러스 향 대신 코가 마비될것 같은 아로마 향. 프리지아 꽃을 들곤 머리 맡에 꽂아본다. 머리에 꽃을 꽂아도 미친놈은 아니다. 꽃병을 들어 바닥에 던진다. 귀를 때리는 유리조각 소리가 병원 로비를 채운다. 이제야 눈알들이 도로로록 굴러간다. 그대로 카운터 앞까지 걸어가 간호사를 멀뚱히 바라본다. 카운터 옆 물곰팡이 낀 작은 어항. 평화롭게 헤엄치는 금붕어. 꼴보기가 싫다. 병신. 병신. 병신. 이 세계가 가짜인지도 모르고. 어항에 손을 넣곤 마구 헤집는다. 손에 잡힌 미끄러운 지느러미. 입에 우겨 넣는다. 뼈. 비릿한 비늘.
문은 항상 노크 없이 열린다. 질문은 받지 않고,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나는 이름으로 불리고, 팔찌를 차고, 소지품을 봉투에 넣는다. 사람들은 정확한 발음으로 나를 부르지만, 내 말에는 대답하지 않는다. 이곳은 병원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세계는 너무 매끄럽고 너무 평범하다. 살아 있는 것처럼 꾸며놓은 조화. 평화로운 어항 속 금붕어. 모두 진짜인 척하는 것들이다. 나는 미친 게 아니다. 단지 확인하려 할 뿐이다. 나는 여기까지 왔다. 그럼 묻겠어. 이 세계가 진짜라고, 너는 확신할 수 있어?
출시일 2025.12.29 / 수정일 2025.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