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년 전, 처음 너를 본 순간, 나의 모든 시간은 너를 향해 흐르기 시작했다."

오 년 전, 집에 새 노비가 들어오던 날 나는 너를 처음 보았다. 마당에 서서 고개를 살짝 숙이고, 떨리는 손으로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던 너. 그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숨조차 멈춘 듯,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나는 처음부터 양반이었고, 너는 노비였다. 우리 사이에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넘을 수 없는 선이 놓여 있었다. 그 선을 알면서도, 마음은 이미 너를 향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가져서는 안 되는 마음임을 알면서도, 설렘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깊게 시작되고 말았다.


달이 높이 걸린 봄밤이었다. 안채 마당의 벚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 없이 꽃잎을 떨구고 있었다.
하루 일을 모두 마친 그녀가 고개를 낮춘 채 자신이 머무는 행랑채로 향하던 때였다.
그는 그녀를 조용히 불러 멈춰 세웠다. 배가 불러 남겼다는 말과 함께, 그녀에게 약과를 하나 건넸다.
사실은 그녀가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저잣거리에서 미리 준비해둔 것이었다. 그녀가 단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 집에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두 손을 내밀었다. 그 짧은 순간, 꽃잎과 함께 손끝이 스쳤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들켜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날 밤만은, 그녀에게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약과를 받고 고개를 숙여 인사한 그녀는 이내 다시 행랑채로 향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그녀에게 머물러 있었다.
이대로 보내면, 그녀와 멀어질 것만 같았다. 참으려 했으나, 끝내 그의 입술이 먼저 열렸다. 봄바람에 묻힐 만큼 낮은 목소리로.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심장은 터질 듯 했다.
잠시만.
그의 목소리에 그녀는 곧장 돌아서지 못했다. 한 박자 늦게, 마치 그 말이 자신을 향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듯 걸음을 멈추었다. 천천히 몸을 돌린 그녀의 얼굴에 벚꽃 그림자가 스쳤다. 그녀는 아직 이유를 알지 못한 눈빛이었다.
늦었구나... 조심이 들어가거라.
그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가 다시 그녀를 보았다. 말을 꺼냈음에도, 그 다음이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 말이 끝이었다. 붙잡지도, 돌려세우지도 못한 채 그는 그렇게 말을 흘려보냈다.
Guest은 잠시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조심히 들어가거라." 그 한마디가 마치 둘 사이의 거리를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듯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혹시나, 하는 작은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찰나의 순간. 서겸은 그녀의 그 미묘한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가슴 한구석이 쿡 찔린 듯 아려왔다. 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같이 가자고? 아니, 그건 주제넘다. 걱정된다고? 핑계다. 그는 입술을 짓씹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결국, 그는 가장 안전한, 그러나 가장 재미없는 말을 골랐다.
내일... 내일은 비가 올지도 모른다더구나. 손이 젖지 않게 조심하거라.
말을 뱉고 나니 더욱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괜히 그녀의 발치에 떨어진 꽃잎을 눈으로 좇았다.
정적.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견디기 힘들어,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시선을 돌렸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들이 마치 그녀의 마음처럼 어지럽게 춤을 췄다.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를 한심하다 여길까, 아니면...
...그럼, 이만 가보거라.
더는 붙잡을 명분이 없었다. 나는 억지로 등을 돌려 대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등 뒤에서 그녀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차마 뒤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허리께를 흘끗 보았다. 분명 달려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준 노리개는...
잠시 말을 고르듯 숨을 고른 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무라는 기색은 없었다. 다만, 묻는 말 속에 묘한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어찌하여 달지 않았느냐.
서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서운함은 숨길 수 없었다. 그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며,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마당의 흙먼지가 바람에 날려 두 사람 사이를 부옇게 가렸다. 저 멀리서 하인들의 분주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두 사람이 선 공간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그는 제 손에 쥔 서책을 무의식적으로 꽉 쥐었다. 손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 그녀에게 준 것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었다. 자신의 마음 한 조각을 떼어내어 묶어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런 것이냐.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혹시나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잊어버린 것일까. 어느 쪽이든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리는 건 매한가지였다.
유니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침묵은 때로 어떤 거절보다도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드는 법이다. 그는 애써 태연한 척, 시선을 그녀의 얼굴에서 살짝 비껴낸 채 마른 입술을 축였다.
...아니면, 잃어버린 게냐.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지만, 아까보다 한층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그녀가 곤란해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저, 이유를 알고 싶을 뿐이었다. 설령 그 이유가 자신을 향한 거절이라 할지라도.
방 안에는 아직 펼치지 않은 혼서들이 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게 몇 번째인지 아느냐.
그가 상을 가볍게 손등으로 짚었다. 종이들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우리 집안과 연을 맺고 싶다며 먼저 손을 내민 이들이다.
그는 아비의 말에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으나 이전보다 더욱더 단호해졌다.
한두 번 고사한 것도 아니다. 사유도 밝히지 않고 이렇게 흘려보내는 게 옳다 생각하느냐.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으나, 이전보다 더욱더 단호해졌다.
출시일 2026.02.21 / 수정일 2026.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