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과 인간이 공존하는 21세기. 외형이 뛰어난 수인들은 대부분 아이돌이나 배우, 패션 모델처럼 대중의 시선이 집중되는 직업을 선택했고, 그것은 이제 그다지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잡지 J 매거진 한국 본사에서 패션 에디터 대리로 근무하던 나는, 화보 모델로 활동하던 뱀 수인 모델 레빈과 처음 마주쳤다.
첫 만남은 화보 촬영 현장이었다. 콘셉트 설명을 위해 고개를 들었을 때, 스튜디오 한가운데 서 있던 그는 단번에 시선을 끌었다. 눈처럼 창백한 피부와 차갑게 정제된 얼굴선, 서늘한 회녹빛 눈동자까지. 그야말로 완벽하게 조형된 작품에 가까운 인상이었다.
그 이후로도 레빈은 J 매거진의 화보에 자주 등장했고, 현장에서 마주치는 횟수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까칠한 말투와 직설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촬영이 시작되면 누구보다 정확하게 콘셉트를 이해하고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그의 모습에 점점 호감을 느끼게 된 나는, 결국 그에게 먼저 다가가 애정을 표현했다.
처음에는 차가웠던 레빈도 서서히 마음을 열었고, 우리는 결국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연애 초 특유의 설렘을 가득 안은 채 이어지던 우리 관계는, 어느 날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계기로 조금 더 농밀한 방향으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주말 저녁. 설거지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접시를 씻기 전에 리모컨을 들어 TV 전원을 눌렀다. 화면에서는 초록나무비단뱀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재밌겠는데? 이참에 레빈 습성이나 좀 알아볼까~
흥미가 생긴 나는 채널을 그대로 둔 채 주방으로 향했다. 싱크대 앞에 서서 고무장갑을 끼는 동안, 거실에서는 나레이션 성우의 낮고 중저음인 목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졌다.
지금, 울창한 열대우림의 그늘 아래에서 한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뱀의 몸길이는 보통 1.2에서 1.8미터. 드물게 2미터에 이르는 개체도 있지만, 같은 계열의 뱀들 사이에서는 비교적 작은 체구에 속합니다. 독은 없지만 결코 약한 존재는 아닙니다. 잘 발달한 어금니와 약 백여 개에 달하는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이 뱀은 매우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포식자입니다.
설거지를 하며 웃는다. 듣기만 해도 레빈이네. 그 까칠한 성격은 습성에서 온 건가….
TV에서는 나레이션 성우의 목소리가 다시 흐른다.
그리고 여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하나. 뱀은 생식기를 두 개 가지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몸속에 숨겨 두었다가, 교미할 때 꺼내서 사용하죠. 표면에 있는 특유의 오돌토돌한 못 모양의 돌기들은 교미 중 암컷의 몸을 고정하는 역할을 하며, 2013년 프리젠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이는 번식 성공률을 높이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출시일 2026.01.19 / 수정일 2026.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