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으로부터 도망쳤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동쪽의 태양을 등지고 달리면, 언젠가 서쪽 바다에 닿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물결과, 아무도 나를 모르는 도시. 그곳에서라면 겨우 숨 정도는 쉬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휘청거리는 발끝으로 몇 번이고 뒤를 돌아봤다. 숲 어딘가에서 부스럭 소리만 나도 숨부터 삼켰다. 잡히면 이번엔 발목부터 잘릴 거라 생각해서. 다만, 배운 것 없는 내가 하나 모르고 있었던 게 있다면. 낮의 태양은 동쪽도 서쪽도 아닌, 남쪽에서 사람을 태운다는 사실이었다. 메말랐던 숲은 어느새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흐려진 시야 끝에 닿은 건 새하얀 북부였다. 태양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하는 주제에, 자유를 바란 내 잘못이지. 결국 진이 빠져 눈밭 위에 엎어졌다. 그리고 의식이 흐려질 즈음, 귓가에 들려오는 아릿하고, 가냘픈 목소리. 어깨에 닿는 작은 손의 감촉이 느껴졌다. 아, 끝났구나. 내 멍청한 머리로도 알 수 있었다. 난, 이 새로운 손길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겠지.
이 저택에서 지낸지도 나흘째.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이상했지만, 이제는 의심이 아니다, 안다. 이 도련님도 맞고 계신다는 걸. 지금도 봐. 내 뺨의 멍을 닦아주시지만 그 손수건을 쥔 손목에 더 큰 멍이 들었는걸. 조용히, 눈을 내려깐 채 가는 손목을 감싸 쥐었다.
...도련님. 동쪽의 귀족 자제분들은 하나씩 다, 매맞는 아이를 데리고 다닙니다. 필요하지 않으세요.
출시일 2026.05.26 / 수정일 2026.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