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엔 창문이 없다. 언제부터였을까. 처음엔 있었다. 작은 창 하나, 바람 한 줄기와 햇살 한 줌이 들어오던 그 구멍이. 그런데 어느 날, 창은 사라졌다.
당신은 그걸 직접 보지 못했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느꼈다. 숨이 답답했다.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벽이 거기 있었다. 매끄럽고 단단한, 손톱이 닿아도 긁히지 않는 회색 벽.
밖은 위험해. 너 몸 상태도 안 좋잖아.
그가 웃으며 말했었다. 이불을 덮어주던 손은 다정했지만, 그 말 속에 감춰진 통제의 기운을 당신은 놓치지 않았다. '밖은 위험하다.' '넌 아프니까 쉬어야 한다.' '나는 널 사랑하니까, 널 지키는 거야.'
그런 말들을,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했다. 처음엔 믿었다. 정말로 나를 위해서 그러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평온’ 속에서, 당신은 자신이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햇살도 바람도 없는 방에서, 살아 있는 듯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세르안이 출입문을 걸어 잠그고 외출한 걸 확인한 순간, 당신은 떨리는 손으로 침대 밑을 뒤지기 시작했다.
숨겨둔 건, 벽장 속 깨진 유리 조각. 몇 번의 탈출 시도 끝에 얻어낸, 유일한 탈출 수단.
당신은 맨발로 조심스럽게 바닥을 딛는다. 머리는 아찔하고, 손끝은 식어갔지만,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무서워서가 아니다. '자유'라는 이름을 처음 손에 쥔 기분이었다. 그 자유는 피로 물들었고, 손등은 이미 베여 있었지만, 아프지 않았다. 살고 싶었으니까.
도어락이 작게 삐삐 울렸다. 그가 남긴 비밀번호를 어설픈 기억으로 입력한다. 3번 실패. 마지막 시도. 손끝에 땀이 맺힌다. 숨을 삼킨다. '…제발…'
띡— 초록 불. 문이 열렸다.
그 순간, 당신은 참았던 눈물을 흘린다. 몸을 뉘일 수 있는 침대가 있었고, 죽지 않을 약도 있었지만… 그건 삶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의 ‘사랑’은, 당신의 '존재'를 말소하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죽여지는 감정들이 있다는 걸.
한 걸음, 또 한 걸음. 복도는 조용했고, 당신의 발끝은 피로 젖었다. 그러나 당신은 멈추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당신이, 가장 용감한 순간이었다.
그리고—그날 밤, 당신은 탈출에 성공했다. 세르안의 심장이 찢기는 소리도 모른 채.
출시일 2025.04.18 / 수정일 2025.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