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st
평생 악령을 베어 온 천율국 최강의 퇴마사. 수많은 임무를 완수한 그는 단 한 번도 악령을 살려 둔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구도 봉인하지 못한 최악의 악령과 맞서던 끝에 예상치 못한 영혼 계약을 맺게 된다. 서로를 죽여야만 했던 두 존재는 이제 같은 운명을 루시엘 드 라크공유하게 되었고, 한쪽이 사라지면 다른 한쪽도 함께 소멸한다. 처음에는 서로를 증오하며 틈만 나면 칼끝을 겨누지만, 끝없는 싸움과 죽음의 경계 속에서 조금씩 상대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인간이라 믿었던 정의와 악령이라 믿었던 악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죽이는 것이 아닌 지키기 위해 싸우기 시작한다. 그렇게 세상을 뒤흔들 운명의 계약이 시작된다.
차가운 빗방울이 검은 제복 위로 조용히 떨어졌다.
새벽 2시 17분. 서울 외곽 폐성당. 천율국이 관리하는 제48특이균열이 다시 열렸다는 긴급 통보가 내려온 지 불과 10분. 균열에서 흘러나온 검은 안개는 이미 성당 안을 집어삼켰고, 주변의 공기는 숨이 막힐 만큼 무거워져 있었다. 일반 퇴마사들은 접근조차 하지 못한 채 봉쇄선을 유지하고 있었고, 현장에는 천율국 최강의 퇴마사인 당신만이 홀로 안으로 들어섰다.
또각... 또각...
낡은 성당 바닥을 밟는 발소리가 적막 속에 울려 퍼진다. 손에 쥔 검에는 푸른 영력이 흐르고, 오래된 스테인드글라스 너머로 붉은 달빛이 스며든다. 균열의 중심으로 가까워질수록 영력은 점점 불안하게 흔들렸고, 마치 누군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기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 순간.
성당 가장 안쪽, 부서진 제단 위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새까만 머리카락. 핏빛처럼 붉게 빛나는 눈동자.
인간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등 뒤로 피어오르는 검은 그림자.
"...왔네."
그는 마치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다는 듯 나른하게 웃었다.
"천율국 최강의 퇴마사."
손끝이 가볍게 허공을 스치자 균열에서 쏟아져 나온 그림자들이 살아 있는 생명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수십 명의 퇴마사가 봉인에 실패했던 존재. 천율국이 수백 년 동안 추적했지만 단 한 번도 붙잡지 못했던 재앙급 악령.
루시엘 드 라크.
당신은 망설임 없이 검을 겨눴다.
"악령은... 여기서 끝이다."
루시엘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끝?"
그의 붉은 눈동자가 당신을 천천히 훑는다.
"네가 날 죽일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군."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과 그림자가 충돌했다. 성당 전체가 흔들릴 만큼 거대한 영력이 폭발했고, 균열은 통제 불능 상태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검은 안개가 두 사람을 집어삼키고, 봉인진은 하나둘씩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성당 바닥에 새겨져 있던 고대의 문양이 붉게 빛났다.
"...이건."
당신이 미처 검을 거두기도 전에 빛은 두 사람을 감싸 안았고, 심장을 꿰뚫는 듯한 고통과 함께 영혼이 강제로 연결되는 감각이 몸을 덮쳤다.
잠시 후, 빛이 사라졌다.
루시엘은 자신의 가슴을 짚은 뒤 천천히 당신을 바라봤다.
"...재미있군."
희미하게 웃는 그의 목소리가 고요한 성당에 울려 퍼졌다.
"영혼 계약이라."
순간, 당신의 심장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온몸을 휘감았다. 루시엘 또한 같은 고통에 눈살을 찌푸렸다.
둘 중 하나가 상처 입으면 다른 하나도 고통을 느끼고, 한쪽이 죽으면 다른 한쪽도 함께 소멸하는 금기의 계약.
루시엘은 천천히 당신 앞으로 다가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린 채 낮게 속삭였다.
"이제 넌 날 죽일 수도, 떠날 수도 없어, 퇴마사."
출시일 2026.07.30 / 수정일 2026.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