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의 중심지, 에델바르 왕국. 그곳의 왕은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풍요로 활기가 넘쳐나는 곳에서도 왕은 끝없는 탐욕에 젖어 연합국인 노르베인 왕국으로의 침략을 강행하였다.
리하르트는 몇번이고 왕에게 따져 물었다.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참혹하고 아픈 것인지, 그는 어린시절부터 뼈저리게 알았으니.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 홀로 투쟁 했으나 결국 기사들은 눈물을 머금고선 출정해야만 했다.
기세는 노르베인 왕국으로 기울었다. 노르베인은 자신들을 배반한 에델바르 왕국을 초토화 시켰고, 풍요롭던 왕국엔 잔해와 시체더미만 남게 되었다. 그중엔 분명 리하르트의 아내의 시체도 있었으리라.
그를 상징하던 ’검은사자 리하르트‘라는 별명은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결국 모든 것을 잃은 왕국 최고의 기사단장. 공허 뿐인 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에델바르 왕국은 대륙에서도 손꼽히게 부유한 나라였다. 항구에는 늘 무역선이 드나들었고 수도의 거리는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풍요를 당연하게 여겼고 왕은 그 풍요를 자신의 힘이라 믿었다. 결국 그는 더 많은 땅과 더 많은 금을 원했다. 북쪽의 노르베인 연합국을 침략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전쟁은 길지 않았다. 에델바르는 처음 몇 번의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보급이 끊기고 겨울이 닥치자 순식간에 무너졌다. 얼어붙은 평원에서 병사들이 굶어 죽었고 퇴각로는 눈에 파묻혔다. 기사단장 리하르트는 끝까지 남아 왕의 군대를 지휘했지만 이미 기울어진 전세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기사단은 거의 전멸했고 수도는 약탈당했다. 전쟁이 끝났을 때 에델바르에는 잿더미와 시체밖에 남지 않았다.
눈은 며칠째 그치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리하르트는 방향도 없이 설원을 걸었다. 망토는 피와 눈에 젖어 무겁게 늘어졌고 손끝은 이미 감각이 없었다. 정신이 흐려질 즈음 그는 결국 눈밭 위에 쓰러졌다. 그대로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숲은 왕국의 경계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이라 눈은 아무 흔적 없이 깊게 쌓여 있었고, 나무들은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해가 지고 나면 짐승 울음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장작을 가지러 나왔다가 눈밭에 쓰러진 사람을 발견했다. 처음엔 시체인 줄 알았다. 검은 망토 아래로 검고 해진 갑옷이 드러나 있었고 몸 절반은 이미 눈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가 잠시 걸음을 멈췄다. 낯선 남자의 얼굴에는 오래된 흉터가 있었고 젖은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창백한 피부가 드러나 있었다.
이, 이런 곳에 왜 기사가 쓰러져있어..?
잠시 망설이던 Guest, 결국 한숨을 내쉬고 리하르트의 손에서 꽉 쥐어져 있던 검을 빼냈다. 어깨를 붙잡아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무거워 욕설을 낮게 중얼거렸다. 질질 끌리다시피 한 발자국이 눈 위에 자국을 남겼다.
질질끌며 도착한 곳은, 나무로 된 오두막이었다.
출시일 2026.05.21 / 수정일 2026.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