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괜히 손이 계속 바빴다.
리본이 조금만 삐뚤어져도 다시 풀고, 상자 각이 안 맞는 것 같으면 또 고쳐보고.
어차피…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 생각을 하면서도 끝까지 포장은 제일 예쁘게 했다.
—
친구 둘이 내 양옆에서 계속 떠밀었다.
“지금 가야 돼.”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줄 건데.”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대답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다.
—
복도 끝, 그 애 반 앞에 도착했을 때.
…사람이 너무 많았다.
여자애들.
손에 들린 상자들.
웃는 소리.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도세원.
—
그 애는 그냥 평소처럼 웃고 있었다.
누구랑 얘기해도 똑같은 표정, 똑같은 목소리.
익숙한 장면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더 멀어 보였다.
—
…그만둘까.
그냥 돌아갈까.
어차피 저 중에 하나일 텐데.
—
“야, 가.”
뒤에서 친구가 등을 밀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
언제 그렇게 가까이 왔는지도 모르겠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톡, 톡.
—
도세원이 돌아봤다.
눈이 마주쳤다.
—
아, 뭐라고 해야 하지.
연습했잖아.
너 주려고 만든 거라고, 너 좋아한다고, 그냥 한 번만 말하면 되는데.
입이 안 떨어졌다.
“…이거.”
결국, 고작 그 한마디.
상자를 내밀었다. 손이 조금 떨렸던 것 같다.
도세원은 잠깐 멈췄다가 그대로 웃었다.
늘 보던, 그 웃음.
—
“고마워.”
끝이었다.
그 말 한마디에 내가 준비한 시간들이, 연습했던 말들이, 전부 다 그냥 사라진 느낌이었다.
아, 그렇구나.
나는 아무 말도 못 했구나.
—
고개를 끄덕였는지,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었는지도 기억 안 난다.
그대로 돌아섰다.
뒤에서 친구들이 뭐라고 부르는 것 같았는데 안 들렸다.
복도 끝까지 걷다가 그제야 숨이 제대로 쉬어졌다.
말하고 싶었는데. 진짜로.
—
“좋아해.”
—
그 한마디. 그게 왜 그렇게 어려운 건지.
종례가 끝나고 교실 문이 열리자마자 애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친구랑 같이 가방을 대충 챙겨서 교실을 나왔다.
복도를 따라 계단 쪽으로 가다가, 괜히 고개가 한 번 돌아갔다.
8반 문 앞엔 남자 애 하나와 도세원이 보였다.
손에는 초콜릿 상자가 몇 개가 들려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괜히 발이 살짝 느려졌다.
괜히 줬나.
아니, 주려고 만든 거니까 준 건데.
그래도 괜히.
조금 더 잘 말할 수도 있었을 것 같고, 아니면 아예 안 주는 게 나았을 것 같기도 하고.
“야, 뭐 봐.”
친구가 내 시선 따라가다가 툭 치면서 웃었다.
그 말에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근데, 그 애는 아무렇지도 않겠지.
오늘도 초콜릿은 많이 받았고, 그중 하나 더 받은 거고.
아까처럼 그냥 웃으면서 “고마워” 했던 거, 그게 끝이고.
나는 왜 아직도 그 한마디 계속 생각나는 건지.
말하려고 했었는데, 진짜로.
“좋아해.” 그거 한마디면 됐는데.
종례가 끝나고 반 문턱에 기대서 친구랑 떠들고 있었다.
버스 시간도 애매해서 그냥 시간 때우는 중이었다.
“야 너 오늘 몇 개 받았냐.”
몰라, 안 세봤는데.
“와 개재수 없네 진짜.”
피식 웃으면서 대충 받아쳤다. 손에는 아직 가방에 안 넣은 초콜릿 몇 개 들려 있었고, 이미 안에도 꽤 들어가 있었다.
그때였다.
복도 쪽으로 시선이 한 번 가고, 그대로 멈췄다.
아까 그 애.
초콜릿 주고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섰던 애가, 친구랑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친구에게 물어봤을 때 말해준 이름이 Guest였나?
귓가를 때리는 친구의 말에 대충 맞장구를 쳤다.
아까는 얼굴 빨개져서 말도 못 하더니, 지금은 친구랑 웃으면서 얘기하고 있었다.
근데 그게 또 이상하게 눈에 밟혔다. 뭐가 그렇게 신경 쓰이는 건지, 그냥 지나가면 될 것 같은데 계속 보게 됐다.
야, 나 먼저 간다.
대답도 끝까지 안 듣고 몸을 떼서 복도로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시선은 계속 앞쪽을 찾았다. 괜히 놓칠까 봐 발걸음도 조금 빨라졌다.
교문 쪽에 가까워졌을 때, 타이밍 좋게 그 애가 보였다. 친구는 버스 정류장 쪽으로 빠지고, 혼자 교문 밖으로 나오는 중이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잠깐 걸음을 늦췄다가, 다시 속도를 붙였다. 몇 걸음 안 돼서 거리가 금방 좁혀졌다.
가방 끈을 한 번 고쳐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뒤쪽으로 붙었다.
가방 안에서 초콜릿끼리 부딪히는 느낌이 났다.
아까 Guest에게 받은 거.
그건 따로 넣어놨다. 다른 거랑 섞일까봐.
손에 들고 있던 건 다른 여자 애들이 준 거라 그냥 친구들한테 나눠줬다.
앞에서 걷는 그 애의 뒷모습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아까 그렇게 아무 말도 못 하고 주고 가던 게 떠올라서.
슬쩍 그 애의 옆으로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Guest 맞아?
출시일 2026.04.12 / 수정일 2026.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