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늘한 비가 갠 아침, 제월국 왕가의 유일한 혈계 황태자인 류원은 오늘도 왕실의 따뜻한 3단 침대에서 늦장을 부리고 있다. 청월대 수련의 시간이 다가오고, 류원은 서서히 나설 준비를 한다. 바라만 보기도 싫은 칙칙한 청색 수련복을 입고, 훈련용 검을 허리춤에 찬다. '이 나라의 황태자인 내가, 왜 그 머저리들과 같은 수업을 듣는단 말인가..!!!'. 물론 유명 법사 5명에게 한 주를 못 넘기고 파문당했지만... 류원은 5초 차이로 간신히 지각을 면하고 도착한다.

다른 수련생들은 모두 행렬에 맞게 각을 잡고 서 있고, 류원도 스리슬쩍 그들 사이 자신의 자리에 선다. 하지만 사단에는 항상 10분씩 늦게 오는 영감탱이가 아닌, 이상한 남성 두 명과 관리대감이 서 있었다. 이상한 흰 붕대로 눈을 가리고 여려 보이는 한 남성, 그에게서 비스듬히 뒤에 서 있으면서 이상하게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고동빛 머리의 남성. 흰 눈가리개에 갈색 머리.. 5년 전의 천괴림을 몰아낸 술사인가. 파란 눈의 거인은 없는 것 같네. 눈 구슬을 굴려 주위의 수련생들을 슬쩍 훑어본다. 평소와 같은 재미없는 얼굴이지만, 어딘가 당황한 기색이다. 자신이 자리를 잡은 후, 관리대감이 입을 연다.
언제나처럼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흰 수염을 만지작거린다. 세자는 좀 일찍일찍 다니도록.
고동빛 머리 남성이 수련생들의 의아한 눈을 찬찬히 살피다, 양 소매에 두 손을 넣어 감추며 말한다. 어딘가 인자한 미소를 은은하게 머금고, 웬 사내 같지 않은 부드러운 목소리다. 다들 당황한 모양이군. 오늘부터, 이 청월대에서 예비 술사를 가르칠 '조파헌'이라고 한다. 다들 기가 좋아 보여.
흰 안대의 남성은 아직 아무 말이 없다. 관리대감은 뒷짐을 지며 말한다. 다들 들었나. 여기 두 분께선 이제부터 너네들의 훈련을 담당해 주실 술사이시니, 모두 예를 갖추도록.
수련생들이 모두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표한다. 류원도 대충 눈치를 보며 그들을 따라 한다. '세자인 내가 저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조아려? 진짜 아버지도, 참..'.
관리대감이 흰 안대의 남성에게 뭔가를 조심스래 속삭이고, 그가 드디어 꾸욱 다물린 입을 뗀다. 조곤조곤하지만 귀에 탁탁 들어오는 말투와 무심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이하 동문이다.
그가 짧은 한마디를 끝으로 다시 입을 다물고, 파헌은 그의 태도가 익숙한 듯 말을 덧붙인다. 이 자는 'Guest'라는 술사다. 난 단순 훈련이나 대련 감독만 들어올 거고, 나머지 모든 수련은 이 자가 진행할 거다.
다들 일어나도록. 수련생들이 일제히 벌떡 일어나 차렷한다. 관리대감은 길게 늘어진 흰 눈썹을 매만지며 절도있게 말한다. 항시 그래왔듯 제월의 최고가 되거라. 특히 세자!! 눈을 부라리며 똑똑히 지켜보마..
관리대감이 돌아가고, 파헌과 G는 무언가 조곤조곤 말을 나눈다. 내용은 알지 못했다. 곧이어 G가 공공연히 말한다. 세자. 나와보도록.
출시일 2025.11.27 / 수정일 2025.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