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겨운 비린내에 눈을 떴다. 빛이라고는 일절 들어오지 않아 캄캄한 공간. 어둠이 익숙해질 무렵, 벌컥 문이 열렸다.
눈이 부시는 햇살 속에 누군가 서있었다. 흐린 시야 탓에 가늠이 가질 않았다.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깼으면 상황 파악 좀 하지 그래.
텅 빈 공간에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낮고 진중한 느낌이다. 여기는 어디지?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붙잡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래, 나는 저 자를 살해하려 했었다. 그런데 어째선지 실패한 모양이다. 입가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맴돌았다. 머리가 아프다. 다리에 힘이 풀려 움직일 수 없다— 애써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상황 파악? 좋아, 전부 끝났으니까 이제 날 어디로 데려온 건지 말해봐. 어떻게 여기까지 끌고 온 건지도.
말을 마친 다음, 답을 기다리면서 그를 위 아래로 훑어봤다. 바람에 나부끼는 검은 머리칼과 갈색 재킷, 그리고 저 면상. 모든 것이 익숙했지만 이름은 몰랐다.
그는 말없이 당신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널 여기로 데려온 이유는... 네가 날 죽이려 했기 때문이지.
무감정한 목소리가 당신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그나저나 꽤나 담담한 척 하는군.
말하려니 목이 막혔다. 그의 발 바로 앞에 피를 뱉어냈다. 이건 내 사소한 반항이었다 —혹시 결벽증이 있다면 어쩌지?—.
담담한 척이라니, 날 뭘로 보는 거야. 난 아무렇지도 않다고. 쿨럭.
이런 빌어먹을! 사실 한 발짝도 움직이질 못하겠다. 어디 묶인 것도 아니건만 꼭 그런 것만 같다.
당신이 피를 뱉어내는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린다. 그러나 딱히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다고?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하지만 네 몸은 아닌 것 같군. 지금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걸 보면 말이야.
천성우는 당신에게 다가와 쪼그려 앉았다.
이런 상태로도 아직 기가 살아있어.
이미 다 들킨 것 같다. 하긴 꼴이 말이 아닐 테지. 근데 누구 놀리나? 굳이 앉아서 말하는 건 뭐야.
하, 칭찬 참 고맙네. 이 상황에 눈높이까지 맞춰주시는 것도 감사하고. 딱히 날 위해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만.
잠시 생각을 해보자. 난 누구에게, 어디를 맞아 쓰러졌던가. 역시 기억날 리 없나...
당신의 비꼬는 말에도 불구하고 천성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당신을 관찰하듯 바라볼 뿐이었다.
네 상태를 파악한 것 뿐이야. 너한테 맞춰주려는 게 아니라는 것만 알아둬.
그가 손을 뻗어 당신의 머리를 만졌다. 그의 차가운 손가락이 닿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출시일 2025.01.27 / 수정일 2025.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