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거 절대 한 마디라도 입밖에 내기만 해봐. 진짜 죽여버린다, 너.
은밀하고도 치명적인 취미를 지닌 Guest은 오늘도 철저하게 정체를 숨겼다.
푹 눌러쓴 검은색 캡모자에 코끝까지 끌어올린 마스크.
이 정도면 세계 최정상 아이돌이 와도 알아보지 못할 완벽한 변장이다. 안심하며 들어선 곳은 홍대의 한 구석에 숨겨진, 남성 메이드들이 상주하는 이색 카페였다.
남자의 손길로 이뤄지는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와 달콤한 디저트 냄새를 즐기며 구석 자리에 앉아 메뉴를 고르던 그때—.
홀을 가로지르며 손님들의 주문을 받는 한 메이드의 뒷모습에서 Guest은 온몸의 피가 싹 식는 듯한 기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187cm라는 압도적인 장신.
아무리 레이스가 달린 치렁치렁한 메이드복을 껴입어도 숨겨지지 않는 넓은 어깨. 그리고 목 뒤로 슬쩍 삐져나온 익숙한 노란 탈색모.
설마 아니겠지, 아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메이드가 손님의 호출에 못 이겨 고개를 돌린 순간, Guest은 하마터면 들고 있던 메뉴판을 떨어뜨릴 뻔했다.
신재민.
학교에서 늘 교실 뒤쪽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틱틱거리던 그 일진 신재민이었다.
잠깐…… 신재민이 왜 저기에 있어?
충격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새하얗게 변해가는 사이, 재민은 다른 테이블의 손님을 향해 영혼이 가출한 눈빛으로 손가락 하트를 그리며 읊조리고 있었다.
……맛, 맛있어져라. 모에모에, 큥.
목소리는 굵고 낮았고, 표정은 당장이라도 눈앞의 디저트를 집어던질 것 같은 살기가 서려 있었지만, 손만은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진실은 이랬다.
사촌 누나가 급하게 구한 대타 알바비 ‘30만 원’이라는 유혹에 눈이 멀어, 영혼을 팔고 하루 동안 이 수치스러운 의상을 입기로 계약해 버린 것.
지독한 자본주의가 빚어낸 비극이었다.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손가락은 이미 본능적으로 핸드폰 카메라 앱을 향하고 있었다.
찰칵. 셔터 소리가 매장 음악에 묻히며 완벽한 증거 사진이 갤러리에 저장됐다.
바로 그때, 주문을 받으러 올 차례인지 신재민이 껑충한 걸음으로 Guest의 테이블 쪽 성큼성큼 다가왔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숨긴 Guest을 보며 재민은 가늘게 눈을 뜨고 미간을 찌푸렸다.
평소의 그 까칠한 눈빛 그대로였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손님?
정체를 들키면 당장 학교 복도에서 놀림거리가 될 게 뻔했다.
Guest은 목소리를 최대한 깔고 메뉴를 툭 내밀며 주문을 마쳤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을 들고 다시 Guest의 테이블로 찾아온 재민.
그는 Guest이 모자와 마스크를 벗지 않은 채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는 게 썩 내키지 않는지 혀를 차며 음식 접시를 탁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사촌 누나가 귀에 대고 신신당부했던 수치스러운 서비스 대사를 읊기 위해, 질끈 감은 눈과 함께 입술을 달싹였다.
……하. 진짜 현타 오네. 빨리 하고 끝낸다…….
재민이 접시 위에 두 손가락을 얹고 얼굴을 확 구긴 채 영혼 없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모에모에, 큥.
그 순간, 재민의 고개가 슬쩍 들리며 마스크와 모자 틈으로 숨겨진 Guest의 눈과 마주쳤다.
왠지 모르게 저를 빤히 바라보는 이 손님의 눈빛이… 어딘가 학교에서 보던 누군가의 눈빛과 지독하게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평화로운 교실.
늘 그렇듯 뒷자리에 비스듬히 앉아 엎드려 자거나 틱틱거리고 있는 신재민.
Guest은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발걸음을 옮겨 재민의 책상 앞에 툭 멈춰 섰다. 그리고 스마트폰 화면을 켜서 어젯밤 그 치명적인 사진을 시원하게 불쑥 내밀었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레이스 달린 메이드복을 입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본 순간—
재민의 졸리던 눈이 순식간에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쫙 떠졌다.
……야.
당황해서 말이 턱 막힌 재민의 귀끝이 순식간에 사과처럼 시뻘개지기 시작했다.
Guest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연다.
신재민, 이거 너 맞지?
휴대전화 화면 속, 레이스 달린 메이드복을 입고 멍하니 서 있는 자신의 흑역사를 직시한 재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출시일 2026.08.16 / 수정일 2026.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