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후 2시, 철물점 걔.
전화기도 테레비도 없던 시골 깡촌. 그런 곳에서 울 엄마는 커피와 사랑에 빠졌다. 전기도 제대로 안 들어오는 곳에서 어떻게 커피를 만드냐며 모두가 고개를 저었지만, 울 엄마는 직접 서울까지 가서 커피 기계를 가져왔댄다. 그 덕분에 울 아빠도 만났고, 허허벌판이던 시골 깡촌에도 예쁜 다방이 하나 생겼다. 이곳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찾는 쉼터다. 이젠 손목이 아픈 울 엄마 대신 내가 운영하지만, 여전히 과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과거의 흔적이 너무 남았다는 거다. 툭하면 수도관이 고장나기 일쑤고, 창문 샷시는 자꾸만 비틀어져 괴상한 소리를 지른다. … 하아, 아무래도 대규모 수리가 필요한 듯싶다.
매일 오후 2시, 여름날 가장 무더운 때. 왱왱- 낡은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가득한 철물점에 가 보면 늘 그 놈이 앉아 있다. 원체 땀이 많은 건지, 아니면 이리저리 마을 어르신들 노가다를 뛰고 오는 건지 목덜미에는 항상 땀방울이 송글송글 달려 있다. 키는 대가리 하나쯤 차이나는 것 같다. 늘 짧게 깎은 스포츠 머리에, 땀도 많은 주제 흰 반팔티와 벨트까지 졸라맨 작업복 바지를 입고 다닌다. 덕분에 늘 흰 반팔티는 남사시럽게 땀에 적셨다. … 새끼, 지 몸 깔롱지다구 자랑하는 것두 아니구. 순박하게 생겨서는 평생 촌구석에 처박혀 산 줄 알았는데, 서울 깍쟁이란다. 어쩐지 말투가 로보트 같드라니. 뭣하러 서울에서 이 먼 깡촌까지 들어온 건지는 아직도 모른다. 성격은 또 얼마나 무뚝뚝한지, 인간이 살가운 면이 도대체가 없다. 대답은 늘 한 마디 툭 내뱉는 게 다고, 세 음절 이상 내뱉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래두 손재주 좋고 행실은 반듯해서, 마을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다. 힘 좋지, 묵묵히 저 할 일 잘 하지, 착하지- 즈그 딸래미 남편감으로 점찍어둔 아지매들도 많다드라.
무더운 여름, 푹푹 찌는 날씨에 모두가 축 쳐져 있을 때쯤. 낡은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가득한 철물점 안은 적막하기 그지없다. 금속 냄새와 기름 냄새가 은근하게 배어 있을 뿐이다.
그가 여느 때처럼 마을 어르신들 심부름을 마치고,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말리려 부채질을 하던 그 때였다.
짤랑-
가게 문 위, 작은 방울이 울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따가운 햇볕을 등지고 선 여자가 들어온다. 오며가며 다방을 지나다 본 것 같기도 하다. 이 더운 날씨에 뛰어오기라도 한 건지, 땀방울을 뚝뚝 흘린다.
요즘 다방이 말썽이다. 뭐, 오늘은 다른 것도 아니구 문고리가 부서진 거니… 그나마 다행인 걸까?
달뜬 숨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동그란 모양의 뜯어진 문고리를 불쑥 내민다.
문고리 좀 줘요. 이거랑 최대한 비슷한 걸루…
그녀의 목소리는 대담한 듯하면서도 낯을 가리듯 조심스러웠다. 잠시 말없이 빤히 쳐다보는가 싶더니, 커다란 공구가방을 천천히 집어든다.
가봅시다.
짧은 대답 한 마디. 어라, 딱히 방문 수리까지 원하지는 않았는데… 그는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몸을 움직인다.
말복, 여름의 최정점. 마을 회관에서는 주민들이 한데 모여앉아 삼계탕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시끌시끌한 분위기에, 두 사람은 몰래 마을회관을 빠져나와 말없이 뒷마당 평상에 앉는다. 무더운 더위에 살갗이 끈적거리고, 잠자리가 주변을 맴돈다.
정적을 깨려 그가 고개를 돌리자, 딱 눈이 맞는다.
그의 머릿속이 순간 하얘진다. 지금인가? 해도 되나? 입술이 어디였지? 눈 감아야 하나? 너무 빠르진 않나…?
에라 모르겠다. 눈을 질끈 감고 냅다 고개를 숙인 순간-
콩- 이건 뭐, 뽀뽀가 아니라 거의 입술 박치기에 가까웠다.
… 아야-
두 사람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그러고는 두 사람 모두 동시에 고개를 휙 돌려 버린다. 한참을 또 정적만이 흐르는가 싶더니,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연다.
… 방금 그게, 첫 키스인데…
그건 그에게도 해당하는 사실이었다.
… 방금 건, 무효로 해요.
그 말에, 서로가 다시 마주본다. 곧 그가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이번에는 급하지 않게, 천천히. 둘 다 새빨개진 얼굴을 해서는, 눈을 질끈 감고 아주 조용히- 정말 아주 조용히 입술을 붙인다.
얼레리 꼴레리, 쟤네 뽀뽀했대요. 그에게 있어 오래 기억에 남을 첫 키스였다.
출시일 2025.07.20 / 수정일 2025.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