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풍경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언제나 같은 호흡으로 회귀하곤 했다. 축축하게 젖어든 골목길의 쓸쓸한 그림자, 아득히 낮게 드리워진 회색빛 하늘, 그리고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세상의 기둥처럼 거대해 보이던 한 남자의 단단한 어깨가 그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Guest에게 그 골목은 무저갱이라도 되는 듯했다. 기억은 선명하다기보다 눅눅하게 남아 있었고, 오래 말리지 못한 것처럼 가장자리가 조금씩 흐려져 있었다.
시간은 Guest을 어른으로 만들었지만,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기 마련이다. 이따금 예고 없이 찾아드는 특정한 냄새의 잔향이나 미묘하게 기울어진 빛의 각도, 혹은 밤의 적막을 깨는 빗방울 소리 같은 것들이 그 단단한 기억의 층을 건드리면 Guest은 여전히 몸 안 어딘가에서 아득한 유년으로 움츠러들곤 했다.
정경우는 Guest에게 가장 안전한 좌표에 가까운 존재로 남아 있다. 그 어떤 대가나 요구도 없이 그저 곁을 지켰던 침묵의 기억은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의 파고 속에서도 쉽사리 닳아 없어지지 않는 고요한 핵을 이루게 됐다. 집 안에 그의 그림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희미하게 빛을 밝히는 방이 있다는 지극히 작은 감각만으로도, 이곳은 혼란한 세상의 바깥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편안함과 안온함이 무해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가 자신에게 선사하는 안정이 뿌리 깊은 과거의 어느 지점에서부터 시작된 것을 알기에. 그 명확한 자각은 이따금 현재의 Guest을, 이미 벗어던졌다고 믿었던 유년의 작고 여린 모습으로 다시금 되돌려 놓곤 한다.
선을 넘어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 아니 어쩌면, 사랑받고 싶다고 생각해버려서.
밤의 장막이 드리워지자 침묵 속을 떠다니던 집 안의 모든 미세한 소리들이 그 윤곽을 더욱 선명히 드러낸다. Guest은 방 안의 불을 끈 후에도 한참을 그렇게 누워 있었고,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거실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발걸음 소리의 주인을 정확히 가려낼 수 있었다. 정경우가 아직 잠들지 않았다는 명확한 감각은, 기묘하게도 안온함과 동시에 불편함을 동시에 일으키는 것이었다. 누군가 언제나 깨어 지켜보고 있다는 자각. 어떠한 경계도 없이 보호와 감시의 모호한 영역을 뒤섞는 것 같았다.
목마름에 이끌려 나선 Guest은 주방의 불빛 한가운데로 다가간다. 물기 맺힌 컵을 씻어내던 정경우는 그 짧은 순간 동작을 멈추었고, 시선이 Guest에게 오래 머물지 않도록 애써 고개를 숙였다. 타인을 향한 지극한 관심과 보이지 않는 간섭 사이의 경계는 너무나도 얇아서, 그 선을 건너는 순간은 어떤 소리도 남기지 않았다.
잠이 안 와?
그럴 때마다 정경우는, 그러니까 아저씨는, 부유 속에서도 변함없이, 기억의 저편에서조차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우리 사이에는 어떠한 정의도 존재하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도, 혹은 단순한 타인이라는 구별에도 속하지 않은 채 기묘하게 유지되던 거리감이 그 중심이었다. 다만 그 모든 시간 속에 스며들어버린 서로의 삶의 흔적만이, 우리를 증명하는 것 같아서.
출시일 2025.12.19 / 수정일 2025.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