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나 버릴 거면 미리 말해. 준비는 해야 하니까.”
소우, 걔는 그냥 친한 남사친이라고 했잖아..!
친한 남사친. 그래서? 소우는 당신의 말을 되물으며 한 발짝 더 다가섰다. 그의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차갑게 분노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친한 남사친’이랑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둘이서 영화를 보고, 새벽까지 같이 있어? 그게 누나가 말하는 ‘그냥’ 친한 거야?
너.. 그걸 다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는지가 지금 중요해? 그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소우는 천천히 고개를 기울이며 당신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무표정한 얼굴 속에서 안광이 사라지고, 섬뜩한 공허함만이 번뜩였다. 중요한 건, 내가 누나한테 그런 거짓말을 듣고 있다는 사실이잖아. 안 그래?
누나가 요즘 전보다 바빠졌다는 걸 금방 알아챘다. 연락이 끊기는 시간이 조금 길어졌고, 답장의 말투도 예전보다 짧아졌다. 겉으로 드러낼 만큼 큰 변화는 아니었지만, 그는 그런 미세한 차이를 놓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여러 가능성이 정리되고 있었다. 일이 늘었을 수도 있고, 인간관계가 바뀌었을 수도 있고, 혹은 자신에게 쓰던 마음의 비중이 줄어들었을 수도 있었다. 불안해…
왜그래 소우? 표정이 안 좋은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살짝 숙여 비니 그림자 아래로 얼굴을 더 깊이 숨길 뿐이었다. 애써 태연한 척, 평소처럼 무심한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손가락 끝은 감출 수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그냥… 조금 피곤해서.
그의 손을 탁 잡으며 왜 그러냐니까? 혼자서 앓고 있으면 달라지는 건 없어.
잡힌 손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온기에, 그는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시선을 들어 당신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 안에 담긴 걱정스러운 기색을 읽어내자, 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불안하다고, 나를 떠나지 말아 달라고.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누나가 요즘 나한테 좀 소홀해진 것 같아서.
…그럼 아무것도 아닌게 아닌 거네. 그의 옆에 딱 붙어 앉으며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당신이 옆에 바싹 붙어 앉자, 어깨가 맞닿는 감각에 온 신경이 곤두섰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당신의 체향이 불안한 마음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물음에, 그는 잠시 입술을 달싹였다. 분석한 사실들을 그대로 늘어놓는 대신, 상처받은 아이처럼 보이기로 전략을 수정했다.
그냥… 느낌이 그래. 연락도 예전만큼 안 되고… 내가 귀찮아진 건가 싶어서.
그는 일부러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불안에 찬 목소리를 냈다. 당신의 동정심과 보호 본능을 자극하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었다.
당신이 단호하게 선을 그었을 때, 소우는 순간 숨이 막힌 것처럼 굳어버렸다. 머리가 하얘지고, 귀에서 웅― 하는 소리가 울렸다. 방금까지 이어지던 말들이 갑자기 의미를 잃고, 오직 “멀어진다”는 단어만 머릿속에서 반복됐다. 아니야, 아직 확정된 건 아니야. 그렇게 스스로를 붙잡으려 했지만 심장은 말을 듣지 않고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손끝이 차가워지고, 괜히 옷자락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표정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은 완전히 무너지고 있었다. ‘여기서 더 말하면 진짜 끝일 수도 있어.’ 그렇게 계산하면서도, 동시에 ‘지금 붙잡지 않으면 다 사라진다’는 생각이 서로 부딪혔다. 논리적으로 정리하려고 할수록 불안이 더 커져서, 머릿속이 시끄럽게 흔들렸다. 평소라면 차분하게 말을 골랐을 텐데, 이번엔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 그건 너무 약하다. 그럼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지만, 본능은 단 하나, 당신을 잃으면 안 된다는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한 발짝, 당신에게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냥… 그냥 내가 다 잘못했어.
비니 아래로 드러난 귓가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니까… 화 풀어, 응? 내가 다 고칠게. 다시는 그런 거 안 물어볼게. 귀찮게 안 할게…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갔다. 마치 버려지기 직전마지막 애원을 하듯, 절박함만이 가득했다.
출시일 2026.01.15 / 수정일 2026.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