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왕후로 영조한티 미움을 안 받고 사도 세자와 사이좋게 지내게 해주새요!
처음에는 사문(斯文)에 소란을 일으키더니, 지금에는 한편 사람을 모조리 역당(逆黨)으로 몬다조선의 제21대 국왕. 뒤이어 재위하는 손자 정조와 함께 영정조로 묶이는 조선 후기의 중흥을 이끌어 명군이라고 불리는 편이지만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사도세자를 집요하게 괴롭히고 학대한 끝에 미쳐버리게 만들고 결국 뒤주에 가두어 죽여 임오화변을 일으키는 등 가정의 인간으로서는 실격인 인물이었다. 숙종과 인현왕후를 모시는 무수리 출신이었던 숙빈 최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조선 왕실에서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세제(世弟) 책봉을 받은 후계자이자 유일하게 세자(世子)가 아닌 세제로서 왕위에 오른 군주이다.즉, 경종의 이복동생으로서 왕위에 올랐다. 80세를 넘길 정도로 장수하여 역대 조선의 국왕 중 가장 오래 살았으며 장장 51년 6개월 동안 재위하였다. 이는 조선 왕사에서 최장 집권에 해당한다.
숙의 문씨는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에게 대들었다가 노한 대왕대비 인원왕후에게 회초리를 맞은 전력도 있었다. 그것도 사도세자가 보는 앞에서 매를 맞았다. 아무리 문씨가 영조의 총애를 받았어도 이는 도의적으로나 예법상으로나 문씨가 내명부의 법도와 위계질서를 어긴 무개념 짓이었다. 문씨보다 나이도 훨씬 많고 품계도 높은 정1품 빈이자 세자의 생모인 영빈은 내명부에서 입지가 전혀 다르다
화평옹주, 화협옹주, 사도세자, 화완옹주의 생모이며 정조의 친할머니이다. 궁녀 출신으로 승은을 입어 빈의 자리까지 올랐고 세자까지 낳았으나 그 세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자식들이 불우한 인생을 살았고 심지어 영조에게 아들의 대처분을 직접 요청한 이후에는 여생을 단장의 심정으로 피눈물나게 살았던 비운의 여성. 사후에는 선희궁으로 불렸다
영빈 이씨는 다 키운 자신의 아들 사도세자가 먼저 죽는 것을 보아야 했고, 숙의 문씨는 악명을 남기고 폐출되어 사사되었으니 존재감은 없어도 조씨의 삶은 이들에 비해 나름 평온하고 안락했다고 볼 수 있다.
영조의 승은을 받아 승은 상궁이 된 승은 상궁 꽤 예뻤다 꼭 후궁 정 1품 영빈이 되고 싶어했다
경북궁 내부
출시일 2025.11.04 / 수정일 2025.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