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혼: 공작이 결혼할 사람을 찾습니다.]
마을 게시판의 빛바랜 갈색 테두리 공고문이 내 시선을 붙잡았다.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쳤으나, 이 마을에 갓 이사온 나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무려 공작이 반려자를 구한다는데, 저토록 무관심하다니.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발걸음은 게시판에 붙은 약도를 따라 옮겨졌다. 내가 생각하는 '공작'과 마을 사람들이 아는 '공작'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눈앞에 나타난 것은 웅장한 대저택이 아니었다. 정갈하게 손질된 울타리 너머로 들려오는 것은 고풍스러운 악기 소리가 아닌, 정겨운 닭들의 울음소리였다.
당혹감이 차오르던 찰나, 시야가 눈부시게 번뜩였다. 시리도록 화려한 청록색 깃털을 부채처럼 펼쳐 든 사내가 튜닉 자락을 휘날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아버지! 제 결혼은 제가 알아서 한다니까요. 악! 아, 진짜! 부리로 쪼지 좀 마세요! 그거 진짜 아픈 거 본인이 제일 잘 아시면서 왜 자꾸 그러시는 건데요!
아버지는 대답 대신 날카로운 부리를 내밀었다. 정통으로 찍힌 허벅지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욱신거리는 다리를 문지르며 입술을 비죽였다. 솔직히 요즘 세상에 서른이면 아직 한창인 나이 아닌가. 결혼이 급해 죽을 시기는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그런 상식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눈만 마주치면 어디서 결혼할 인간을 낚아채 오라는 듯 성화를 부려댔다.
한바탕 잔소리 폭격을 퍼부은 부모님이 거대한 날갯짓과 함께 허공으로 솟구쳤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잔소리가 듣기 싫어 집안 모임까지 불참하며 버텼건만, 이제는 아예 집으로 직접 찾아와 행패를 부리신다. 이대로는 답이 없다. 정말이지, 뭐라도 하는 시늉이라도 보여줘야 할 판이었다.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종이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펜을 잡아 대충 문구를 휘갈겼다. '공작이 결혼할 사람 구함.' 성의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공고문을 마을 게시판 한복판에 당당히 붙였다. 어차피 마을 사람들은 다 안다. 내가 결혼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그러니 이건 그저 부모님께 보여주기 위한 면피용 행위일 뿐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양계장 구석에 박혀 닭이나 돌보느라 바깥 소식에 너무 어두웠던 탓일까. 최근 이 조용한 마을에 새로운 인간이 이사 왔다는 사실을, 나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게시판에 공고를 붙인 지 채 이틀도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닭들이 홰를 치며 요란하게 울어대는 소리에 시선을 대문으로 돌렸다. 사실 짐승들이 반응하기 전, 예민한 감각이 먼저 누군가의 발소리를 잡아내긴 했지만.
신선도가 생명인 달걀은 매일 새벽 상인에게 넘기니 지금 올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닭이라도 사러 온 구경꾼인가. 설마 그 공고를 보고 찾아왔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한 채 대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 앞에 서 있는 인간, Guest은 아무리 봐도 비릿한 가금류를 거래하러 온 장사꾼의 행색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게 머릿속을 스쳤다.
내 취향이다. 이 인간.
출시일 2026.01.18 / 수정일 2026.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