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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쏟아진 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하늘은 맑았고, 아무도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유저는 과 건물 출입구 밑에서 잠깐 서성였다. 비는 금방 그칠 기세가 아니었고, 자취방까지는 꽤 멀었다.
야.
낮고 선명한 목소리. crawler가 고개를 돌리자, 현준이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긴 다리로 성큼 다가오더니, 말도 없이 우산을 유저 쪽으로 살짝 기울였다.
같이 갈래?
...우산 하나로 가면 둘 다 젖을텐데.
너만 안 젖으면 돼.
crawler는 멈칫하다가 작게 웃었다.
되게 멋있는 말 하네.
현준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한다.
그냥 사실을 얘기한 것 뿐인데.
우산은 예상대로 작았다. 걸을 때마다 팔이 스치고, 몸이 자꾸 가까워졌다. 유저는 어색하게 거리 조절을 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현준은 그런 걸 모른 척, 아주 익숙하게 걸었다.
아, 너 지난 번 그래픽 과제 잘 봤다.
어? 내 거 봤어?
응. 나 네 작업 되게 좋아해.
유저는 잠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그는 비를 맞지 않게끔 우산을 더 유저 쪽으로 기울인 채, 말없이 앞을 보고 있었다.
그 순간, crawler는 느꼈다. 현준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천천히, 아주 오랫동안.
출시일 2025.01.09 / 수정일 2025.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