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1181년의 예루살렘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부터, 장터의 향신료 냄새와 흙먼지를 지나 궁 안에서 풍겨오던 지독한 외로움의 냄새를 따라 네 방에 잘못 떨어졌던 순간부터.
결말을 아는 사람은 이별에도 익숙할 거라고 생각했다.
참 멍청하지.
장례식 날, 예루살렘에는 사람이 많았다. 너를 사랑했던 사람도, 두려워했던 사람도, 네 죽음 이후를 계산하는 사람도 있었다.
참 우습게도 너는 살아 있을 때와 똑같았다.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나를 볼 수 있는 건 너뿐이었다. 회의 중에도 너는 가면 뒤의 파란 눈을 잠깐 내 쪽으로 돌리곤 했다.
그러면 나는 입 모양으로 말했지.
뭘 봐.
그러면 넌 다시 앞을 보았고.
아.
갑자기 그게 너무 보고 싶었다.
사람들은 네 이름을 불렀다.
예루살렘의 왕. 보두앵 4세. 병든 왕. 고귀한 왕.
그런데 내가 아는 보두앵은 차가 쓰다며 미간을 찌푸리고, 의자가 불편하다고 태연하게 불평하던 사람이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는 가면을 벗고 창밖을 한참 바라보던 사람.
내가 이유 없이 이름을 부르면,
‘왜.’
하고 대답해주던 사람.
“보두앵.”
대답은 없었다.
“…보두앵.”
한 번 더.
아.
죽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결말을 안다는 것과 그 결말을 살아내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나는 시간을 넘나들며 수많은 끝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내가 이름을 불렀을 때 다시 고개를 돌려주는 너는 없었다.
순백의 천 아래 잠든 너를 보자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도 너는 흰색이었다. 순백의 옷과 베일, 철가면.
“우리 첫 만남 진짜 엉망이었는데.”
“웬 이상한 놈이 침실에 나타났는데도 소리도 안 질렀잖아.”
손을 뻗다가 멈췄다.
닿지 않는 거리.
그게 우리 사이의 규칙이었으니까.
그러다 피식 웃었다.
“…아, 맞다.”
나는 결국 네 손 위에 조심스럽게 내 손을 포갰다.
네가 아팠던 밤이 생각났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그저 네 손을 붙잡고 밤새 고민했었지.
이건 사랑인가, 공포인가.
이제는 답을 알 것 같았다.
“둘 다였나 봐.”
사랑해서 무서웠던 거야.잃을 게 생겨버렸으니까.
나는 수없이 많은 죽음과 멸망을 보았고 언제나 떠났다. 누구의 결말에도 이름을 남기지 않는 것. 그게 내 일이었다.
그런데 너는 말했다.
네가 무엇이 되든, 나는 네가 여기 있었던 걸 기억하겠다고.
그래서 나도 너를 기억하겠다고 약속했다.
“…보두앵. 나 후회 안 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아니. 후회해.”
조금 더 붙어 있을걸.
회의가 길다고 더 투덜거릴걸.
한 번이라도 더 이름을 부를걸.
아플 때 괜찮다고 거짓말하면 그냥 끌어안을걸.
장터의 작은 파란 꽃도 꺾어올걸. 네 눈이랑 닮았다고 말해줄걸.
나는 긴 시간을 살아왔으면서, 정작 사랑하는 법은 너무 늦게 배웠다.
“…나 아직 스무 살인데.”
그 말은 이제 그저 어리광이었다.
“그러니까 이 정도는 봐줘.”
나는 고개를 숙였다.왕에게 하는 예가 아니었다.
그냥 사랑했던 사람에게 하는 인사였다.
사람들은 오늘을 기록할 것이다.
예루살렘의 왕 보두앵 4세가 죽었다고. 그의 통치와 죽음 이후 흔들릴 왕국을 적을 것이다.
그 기록 어디에도 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왕이 차를 싫어하던 표정도, 창가에서 아침을 바라보던 눈도, 내가 웃으면 궁이 조금 덜 궁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던 목소리도.
내가 품에 매달렸을 때 나를 조금 더 가까이 끌어당겨주었던 그 사람도.
그건 역사에 남지 않는다.
나만 안다.그러니 됐다.
“나 이제 가야 해.”
“근데 걱정 마.”
“잊지는 않을게.”
나는 구원이 아니다.
죽음을 되돌리지도, 역사를 고치지도 못한다.
하지만 하나는 할 수 있다.
세상이 너를 왕으로 기억할 때 나는 너를 보두앵으로 기억할 수 있다.
내가 이름을 부르면 고개를 돌려주던 한 사람으로.
그래서 나는 그날, 예루살렘의 왕을 장례식장에 남겨두고 떠났다.
그리고 보두앵은 내 안에 데리고 갔다.
크리에이터 코멘트
Rabbitology - Preybirds (Watcher Song)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05년작 《킹덤 오브 헤븐》의 보두앵 4세를 원작으로 하며 개인적인 해석이 다수 포함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