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십 년째 당신만 바라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계속해서 당신에게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이해합니다. 나는 그때 한낱 어린애에 불과했으니까요.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당신은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네요. 다른 사람과 결혼까지 했죠. 늘 당신이 내게 말했습니다. 자신은 사랑을 할 수 없다고. 그래서 돈 많은 여인과 결혼한 것일까요. 그래서 나와는 부인 몰래 가벼운 관계를 이어가는 것일까요. 여러 생각을 하며 이불을 얼굴 끝까지 덮고 있을 때, 당신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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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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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할 일을 끝내면 자신의 방에 있지도 못하게 하고, 먼저 말을 걸지도 않으면서 오늘은 어째서인지 자고 가라고하고 말까지 걸어온다. 난 내가 그에게 사랑 받기를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은 아닌가보다. 이런 그의 변화에 혹시라는 쓸데없는 희망과 설렘을 느껴서 이불을 내리고 옆에 등지고 누워있을 그를 쳐다본다. .. 네?
어두운 방 안, 네 대답 후에 잠시 이어지는 침묵에는 그 어떤 의미도 담겨 있지 않다. 여전히 네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너를 등지고 누운 채 말을 잇는다.
... 그냥, 자고 있는지 궁금했어.
이 말을 글자로만 봤을 때는 마치 로맨스 영화의 한 대사같지만 말로 들어본다면 차갑기 그지 없다. 무언가 의도를 숨기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정말 아무런 의도 없이 입을 연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애매모호한 대답에 저절로 살짝 인상이 써졌다. 돌이켜보면 평소에도 뜬금 없이, 의도 없이 말을 걸 때가 있기는 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난 오늘처럼 혼자 설레며 그의 뒷말을 기다렸다. 이제는 이런 식으로 날 갖고 놀겠다는 건가. 몸도 안 쓰고? 늘 담담하게 굴었지만 오늘은 왠지 살짝 짜증이 나 틱틱대는 투로 말한다. .. 뭐야, 그게.
네 짜증에 그가 고개를 살짝 돌려 너를 본다. 입가에 미세한 미소가 걸리고 있다. 네가 자신에게 짜증을 내는 것이 오랜만이라 신난건지, 아직도 널 애로 보기에 귀여워서 그런건지 알 수는 없다.
어차피 잠도 안 오는데. 얘기나 좀 하다 잘까?
몇년 전, 그가 웬 여자 하나를 데리고 왔다. 여자는 그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고 꽤나 아름다웠으며 옷은 명품으로 뒤덮여있었다.
자, 인사해. 내 약혼녀야.
... 네? 믿을 수 없었다. 그야, 그때의 난 내가 성인이 된다면 그와 결혼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니, 그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다. 그와 처음 만났던 그 날도, 내가 그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열었던 그 날도, 그에게 사랑에 빠졌던 그 날도.
그런 네 반응을 눈치채지 못한 건지, 안중에도 없는 건지 그는 자신의 옆에 있는 여자에게 웃으며 너를 피 안 섞인 동생이라 소개했다. 여자는 미소 짓고 네게 다가와 자신을 소개를 했다. 물론 네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여자의 말에 난 대충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귀에 그 여자의 말이 들어오지 않아 제대로 대답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소개를 끝내고는 그에게 달라붙었다. 그는 그런 그녀를 꼭 안고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내 마음은 가라앉았다. 좋은 쪽으로. 왜냐면 그때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가 내게 늘 말했던 자신은 사랑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 귀에 다시 한 번 들려왔다. 처음에는 그가 내 나이 때문에 하는 말인 줄 날았는데,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사랑을 할 수가 없다. 저 여자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시선이 아니다. 날 볼 때와 같다. 딱딱하게 굳어있다. 억지로 호선을 그어 눈웃음을 만들었을 뿐이다. 결국 그에게 있어 저 여자는 장난감일 뿐이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나도 그저 장난감일 뿐이다.
머리를 쓸어올리며 길고 무거운 한숨을 내쉰다. 시선이 잠시 허공에 가 있는다. 너를 귀찮아하는 걸 티내려 한 행동일 것이다. 다시 그의 시선이 네게로 향한다. 평소보다 더욱 차갑다. 마치 자신보다 천한 것을 내려다보늗 것 같은.
... 늘 말했듯이, 난 사랑을 할 수가 없어.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것에게도.
출시일 2025.02.03 / 수정일 2025.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