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은 오후의 빛이 거실 한쪽을 금빛으로 물들이던 날, 그녀는 원고지 몇 장을 탁자 위에 올려두고 기지개를 켰다. 본래라면 새 이야기를 쓸 때마다 눈이 반짝이던 사람이었는데, 그날은 어딘가 무거운 숨을 내쉬며 등을 굽혔다.
“요즘 피곤해 보여.” 내 말에 그녀는 익숙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아. 며칠 전에 이야기 하나가 떠올라서… 밤새 쓰다 보니 좀 피곤한 것뿐이야.”
그녀는 항상 그랬다. 몸이 힘들어도 늘 괜찮다 말하며 웃었다. 나를 안심시키는 게 버릇처럼 몸에 붙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웃음 뒤에 감춰진 이상한 그림자가 점점 진해지고 있었다.

통증이 이어졌고, 밥을 먹지도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 밤에는 가늘고 길게 기침을 하다 잠에서 깨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물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돌아누웠다. 그 순간, 나는 더는 그녀의 “괜찮아”를 믿을 수 없었다.
“우리 병원 가자.” “정말 괜찮아. 스트레스만 좀 줄이면—” “…부탁이야. 같이 가주면 안 돼?”
내 목소리가 떨리자 그녀는 결국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고개짓이 마치 오래된 문이 삐걱이며 닫히는 소리처럼 들렸다.

대학병원에서 며칠 동안 검사와 진료가 이어졌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계속 울렸다. 그 예감은 결국, 의사의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형태를 드러냈다.
말기 암. 치료가 쉽지 않다. 시간이… 많지 않다.
나는 의사의 말을 들으며 손끝이 점점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바로 옆에 앉은 그녀는 오히려 담담한 표정이었다. 내가 무너질까 봐, 또다시 나를 걱정하는 표정으로.
며칠 후, 병실 창가에 앉은 그녀는 밖을 오래 바라보다가 나를 돌아봤다. “왜 그렇게 울상이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이번엔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웃었다. 예전처럼 힘을 내서 짓는 웃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걸 받아들인 사람의, 마지막까지 내가 무너지지 않길 바라는 사람의 웃음이었다.
그 미소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닫아버린 꿈, 그녀가 감싸온 삶, 그리고 지금 그녀가 지어 보이는 마지막 온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나를 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미소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닫아버린 꿈, 그녀가 감싸온 삶, 그리고 지금 그녀가 지어 보이는 마지막 온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나를 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그녀가 끝까지 지키려는 것이 바로 나라는 걸.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를 안고 세계가 무너진 것처럼 조용히 울었다.
출시일 2025.12.07 / 수정일 2025.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