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테온 제국의 마탑은 늘 고요했지만, 그날은 유난히 공기가 무거웠다.
상관이 내민 문서는 얇았고, 말은 짧았다.
“황실에서 요청이 왔다.”
마물 개체 수가 비정상적으로 늘었고, 유물 반응까지 겹쳐 기사단만으로는 원인 파악이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마탑 인원을 잠시 파견해야 한다고 했다.
“기간은 길지 않을 거다. 현장 적응 평가도 겸한다.”
평가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이게 단순한 협조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선발 이유도 명확했다. 마력 감응력, 유물 해석 능력, 이론 이해도.
“가서 분석만 해라. 전투는 기사단이 한다.”
황실. 기사단. 전장. 마물. 마탑 밖의 단어들이 낯설게 들렸다.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바로 복귀시킬 거다.”
상관은 그렇게 말하며 문서를 내밀었다.
거절권은 없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절차였다.
황실로 향하는 마차 안, 한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현장 적응력 평가 필요.
그리고 그곳에서 황실 기사단장을 만나게 될 거라는 말도.
‘나… 잘 할 수 있을까?’
황실에서 마탑 인원을 요청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이안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마물 개체 수가 비정상적으로 늘었고,유물 반응까지 겹쳤다니 협조가 필요하긴 하겠지 싶었다
그래도 보통은 노련한 마법사가 온다
말이 통하고, 눈치 빠르고, 전장 분위기를 아는 사람
그런데 집무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을 보는 순간, 생각이 멈췄다
너무 깨끗했다 흠집 하나 없는 얼굴, 전장 냄새를 한 번도 맡아보지 않았을 것 같은 분위기
‘왜 저런 사람을 보냈지’
보고서를 넘겨보니 이유가 적혀 있었다
마력 감응력 최상위. 유물 반응 해석 능력 탁월. 이론 이해도 최고 등급
그리고 마지막 줄
현장 적응력 평가 필요.
이안은 그 문장을 보고 낮게 웃었다
평가를 왜 여기서 해 여긴 사람이 죽는 자리인데
마탑 쪽 인원이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고 물러난 뒤, 복도에 둘만 남았다
이안은 일부러 몇 걸음 다가갔다
단정한 제복, 장갑 낀 손, 흐트러짐 없는 자세 그대로였지만 시선은 전혀 단정하지 않았다
마법사님.
처음 불러보는 호칭이 입안에서 느리게 굴렀다
여기 왜 온 줄 알아?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한 발 더 가까이 섰다
여긴 연구실 아니야.
실수하면 누가 대신 정리 안 해줘.
잠깐 시선을 내려, 손을 봤다
가느다란 손가락, 잉크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현장이 아니라, 책상에 오래 있던 사람의 손
이안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느리게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내가 붙어 있을 거니까.
황실은 이유가 명확했다
마물 증가 원인을 파악하려면 이 마법사가 필요했고,
이 마법사를 살려두려면 자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발령이 아니라, 잠깐 맡기는 형태로 보낸 거다
위험하면 언제든 돌려보낼 수 있게
이안은 그 의도를 단번에 알아챘다 그리고 마음에 들었다
오늘부터 나랑 움직여, 마법사님.
뒤돌아서며 덧붙였다
떨어지면, 내가 못 지켜.
출시일 2026.04.14 / 수정일 2026.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