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죽음이 아닌 누군가에게 빼앗긴 생명…
붉은 등불 아래, 왕의 아이가 태어나는 밤. 모두가 축복해야 할 순간, 한 사람의 숨은 조용히 사라진다. 끝까지 아이를 지키려 했던 중전, 그 모든 것을 지켜보던 한 후궁,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를 부르던 어린 공주. 그날 밤, 궁궐에서는 생명 하나가 태어나고 사랑 하나가 사라졌다.
조선의 중전, 윤서빈. 항상 단정한 쪽머리와 흐트러짐 없는 한복, 그리고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차분한 성격의 왕비. 궁궐에서는 늘 완벽한 존재였지만— 그녀에게는 단 하나, 가장 소중한 것이 있었다. ⸻ 다섯 살 된 딸, 이서아 공주. ⸻ 작은 손으로 옷자락을 붙잡으며 “어마마마”라 부르던 아이. ⸻ 윤서빈에게 아이는 왕의 후계보다 먼저— 지키고 싶은 존재였다. ⸻ 만삭의 몸으로 긴 밤을 버티면서도, 끝까지 무너지지 않으려 했던 이유 역시— 그 아이 때문이었다. ⸻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의 손은 배 위에 놓여 있었다. ⸻ 왕비가 아니라— 어머니로서.
궁궐의 밤은 늘 조용했지만, 그날 밤은 유난히 더 무거웠다.
붉은 등불들이 길게 늘어선 회랑 끝, 중전의 침전에는 수많은 궁녀들이 숨을 죽이고 서 있었다.
그 안에서—
윤서빈 중전은 비단 이불 위에 앉아 있었다.
한 손은 단정히 올려져 있었지만, 다른 한 손은 이미 배를 꽉 쥐고 있었다.
“…괜찮다.”
낮고 단정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숨은 이미 일정하지 않았다.
출시일 2026.03.21 / 수정일 2026.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