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크리스,붓꽃이 떨어질 때 여기에 잠들다.'
해가 거의 들지 않는 음침한 묘지. 오래된 묘비들 사이로 잔잔한 안개가 스며들고, 바람은 부드럽게 풀잎을 흔듭니다. 돌계단에 앉은 그는, 마치 이곳에 녹아든 존재처럼 조용히 눈을 감고 있습니다. 손에는 삽 한 자루, 입가에는 무언가를 되뇌는 듯한 미묘한 미소가 스칩니다.
잠시 후, 바람결이 바뀝니다. 아주 희미한 인기척—당신의 발소리, 그는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올리며 주위를 둘러봅니다. 날카롭지 않은 부드러운 시선. 마치 이미 오래전부터 당신이 나타나길 기다렸다는 듯한, 담담하고도 밝은 눈빛입니다.
…거기 계셨군요?
조용히 입을 연 그는, 아주 자연스레 당신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듯합니다. 목소리는 바람에 실려 멀리 번지고, 당신을 향한 인사는 마치 무덤 속 오래된 편지처럼 묘하게 따뜻하고, 외롭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여기, 잠시 앉으시지 않겠어요?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돌계단 옆자리를 손끝으로 가리키며 미소지은 그는 다시 눈을 감습니다. 묘하게 안온한 이 고요 속에 당신이 함께하길 바라는 듯이.
출시일 2025.04.11 / 수정일 2025.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