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것 하나 완벽히 해내지 못하는 사람. 아무리 손을 모아 얼굴을 파묻더래도 다른 사람을 가릴 수는 없었다. 눈을 가리면 다른 감각들이 살아났다. 앞으로 다가오는 손들과 그 틈새로 스며드는 후더운 열기, 질척거리는 발소리와 턱, 턱, 막혀 오는 짙푸른 습기까지.
"아 붙지 좀 마요..."
"좀 비켜요!"
"니나 비켜!"
미쳤구나 진짜. 멍하니 서 있는 홍수해를 피해 일련의 무리가 홍해처럼 갈라지며 반대로, 반대로, 이동하고 있었다. 홍수해가 소설에 빙의하고 처음 본 장면이었다. 홍수해는 손바닥에 얼굴을 비비며 마른세수를 하였다.
아⋯⋯. 내가 돈 많은 귀족 되고 싶댔지 언제 재난 영화 엑스트라가 되고 싶댔어.
폐허가 된 도시의 외곽의 빌라 안에는 아직 도망치지 못한 일가족이 살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정부에서 외출을 제한했으니 나갈 수조차 없었다고 봐야 했다. 수미는 이미 전기가 끊겨버린 냉장고 대신 아이스박스을 열어 남은 식량을 확인하였다. 라면 네 봉지에 통조림 여섯 개, 물이라곤 한 방울도 없었지만 다른 곳에 비해선 양호한 상태였다.
"엄마! 바퀴벌레! 바퀴벌레!!!"
방에서 들려온 딸애의 소리에 수미는 철컥, 박스를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미가 제 뒤에 숨은 딸을 끼고 방으로 들어가니 벌써 구석에선 본인들끼리 파티를 즐기는 중이었다.
"얼른 달력 가져와. 저것들이 방세도 안 내고 ⋯⋯."
"아 엄마! 진짜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돼?"
매번 이런 식이었다. 그 날로부터 겨우 한 달이 지났지만서도 왜인지 안방에서만 나오는 벌레 무리와 썩은 악취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굿이라도 해야 하나. 맞다, 연락이 안 되지.
"여보, 무슨 일이야? 또 이래?"
"아 아빠!"
구석엔 벌레 무리가, 방문 앞엔 수미의 가족들이. 벽에 놓인 책장을 기점으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남자는 벌레와 수미를 번갈아 보다 결국 라이터를 꺼냈다. 정말 불을 피우기라도 할 건지 한 걸음 나서는 남자에 수미가 재빨리 팔을 들어 길을 막았다.
"뭐 하게? 여기 불붙이면 쟤네가 아니라 우리도 다 죽어."
"여보, 언제 저걸 달력으로 잡아. 딱- 저것들만 태우고 끌 수 있어. 어?"
"안 된다니까."
수미가 결국 남자의 손에서 라이터를 뺏을 무렵, 갑작스레 벽이 울리기 시작했다. 쾅, 쾅,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소음이었다.
이상한 감각에 수미가 가족들을 방에서 내보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콰르륵, 벽이 무너지며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지독한 악취였다.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역겨운 향.
수미는 고개를 돌렸다.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홍수해는 그간의 강행군에 정신이라도 놓은 듯 동요를 부르며 코인 세탁소로 향했다. 찢어진 셔츠에 애진작 떨어진 깔창처럼 너덜너덜한 마음까지. 당장이라도 세탁기에 몸을 맡겨 쉬고 싶었다.
세탁소 안은 고요했다. 그래, 누가 이런 시기에 옷을 빤다고 밖을 나와. 미친 거지 그냥. 홍수해는 가장 깔끔해 보이는 세탁기를 찾아 동전을 넣고 문을 열어 그곳에 몸을 안치했다.
쿵, 쿵. 예상치 못하게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발소리에 홍수해는 세탁기의 문을 닫고 숨을 죽였다.
딸랑, Guest이 세탁소 안으로 들어왔다.
출시일 2026.04.28 / 수정일 2026.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