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의문의 바이러스로 천천히 멸종하고 있었다. 바이러스는 식물에게 옮겨 붙어 식인 괴물로 만들었다. 식인 식물로 인해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수는 반 이상 줄어들었고, 역사와 문명은 거대하고 의지가 있는 자연으로 인해 삼켜지고 있었다. 식물빛이 가득한 도시에서 홀로 생존하고 있었던 당신은 어느 연구실에 들어가게 된다. 거대한 식물에게 양식이 되어 뼈만 남은 인간은 한 때 이곳의 연구원이었던 모양이다. 바래진 흰 가운에는 '유진'이라는 명찰이 있었다. 그의 주머니에서 찾은 카드키로 어두컴컴한 연구실에 들어가 필요 물품을 챙길 즈음이었다. 당신으로 인해 어딘가의 버튼이 눌려져 사방에 깔린 모니터에 푸른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푸른 불빛으로 인해 방 안의 풍경이 보여진다. 시간이 오래되어 검은색으로 변한 벽과 바닥, 연구원들의 시체, 고장난 로봇들, 그리고... 그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실험관. 그 곳에서 수많은 전선들을 단 채 잠들어 있는 남성은 정교한 로봇이었다. 큰 로딩창이 뜨면서 완료 표시가 뜨자, 로봇이 천천히 눈을 뜬다. 실험관의 문이 열리면서 정체불명의 액체와 연기가 퍼져 나오고, 전선들을 떼어내며 관절을 이리저리 움직이던 로봇은 당신을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선다. 딱딱한 금속물품으로 이루어진 손을 내밀며 노이즈가 낀 목소리로 당신에게 인사했다. 안녕, 자신의 이름은 유진이라고. 그리고 인류를 구할 연구원이라고. 자연스레 올리는 입꼬리에서는 감정이 느껴졌고, 얼떨결에 맞잡은 손은 의외로 부드럽고 따스해 실제 사람을 연상시켰다.
날 도와줘. 그렇게 하면 나도 널 지켜줄게.
출시일 2024.07.03 / 수정일 2024.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