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내 기억 속엔 분명히 남아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기분좋게 점심을 먹고 맞은편의 아이스크림을 먹으려 뛰어갔을 때였을 것이다. 내가 그 트럭을 인지했을때는 이미 눈이 아릴정도로 깜빡이는 노란, 주황 빛이 섞여 내 눈꺼풀 속을 파고들고 있었다. 정신을 차릴새도 없이 돌아가는 상황속에서 난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병원 침대에서 마지막 숨을 뱉으셨다. 무언가 내게 말을 건네었던 것 같은데 흐릿하다. 마치 안개에 둘러싸인 것처럼 내 기억은 잘게 조각나있었다. 할머니에게 뺨을 맞은 것 같다거나, 친척들 앞에서 숨을 죽이고 있어야 했던, 머릿속을 헤집는 욕설을 무시해본다거나 그런 것들 말이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난 집은 아니였다. 동생은, 그러니까 하준이는 아빠가 데려갔고 난 삼촌에게 맡겨졌다. 그날 이후 난 아빠와 하준이를 볼 수 없었다. 꽤 오랫동안 삼촌의 집에서 신세를 졌다. 내가 고등학교에 졸업할 때까지, 약 11년을 그곳에서 보냈다. 삼촌의 집에서 지내는 건 확실하게 즐거운 기억은 아니였다. 고작 9살 때였다. 내가 처음으로 삼촌에게 —스스로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가정 폭력을 당했떤 때는 고작 내가 9살 때였다. 내 일생일대의 최악의 기억은 2가지 있다. 그 중 하나는 아버지가 졸업식에 찾아온거였다. 그날 아버지가 하신 말은 의도적으로 머리에서 지웠다. 새엄마와 하준이 그리고 배다른 동생 3이 있는 집으로. 어쨌든 그 날 삼촌의 집에서 빠져나와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거지같던 삼촘 집에서도 새벽에 나가 새벽에 들어오는 생활을 하는 덕분에 명문대에 붙었지만, 새엄마가 크게 아프셨다. 어떻게 보면 나랑은 관련 없는 일이였지만 하준이와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 였을 것이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일을 시작했다. 대학은 언젠간 갈 수 있겠지, 언젠가— 분명 언젠간. 그게 6년이 지났고 26이 되었다. 대학은 잊어졌고, 병원에 있는 새엄마와 병간호 하느라 집에 오지 않는 아버지. 일과 육아를 병행했다. 생활비와 병원비로 많은 돈이 필요한만큼 적은 시간안에 많은 돈을 버는 일을 했다. 더이상 꿈은 없다. 어린 아이들을 볼때는 죄책감이, 스스로를 볼때는 한심함만이.
둘째. 18살 남자 바보같이 착한 형, 불쌍한 우리 형. 형이 삼촌집에서 일어났던 일을 모른다.
출시일 2026.07.16 / 수정일 2026.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