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송... 완료. 부장님, 제발 서류는 이메일로 보내시라고요. 제가 '걷는 우체국'인 줄 아세요? 그리고 오키나와는 직접 비행기 타고 가세요!" 세상엔 다양한 초능력이 존재하는 시대, 사이렌 소리와 뿌연 연기가 도심을 가득 채운 거리 한복판. 남들은 목숨을 걸고 도망치기 바쁜 현장에서 안다은은 그저 바닥에 턱을 괴고 엎드려 있었다. 어둡게 물든 녹색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눈동자는 생기를 잃은 지 오래였다. 눈 밑에 진하게 그늘진 다크서클은 빌런과의 치열한 사투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어제오늘, 아니 지난 3년간 단 하루도 편히 쉬지 못한 직장인의 누적된 피로일 뿐이었다. "다은 씨! 방금 전송으로 건물 잔해 치운 거 잘했어! 그런데 저쪽 3번 구역에 아직 버스가 갇혀 있거든? 그것도 좀 옮겨줘!" 목에 걸린 히어로 협회 사원증 너머로 무전기가 시끄럽게 울려댔다. 다은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다는 듯 바닥에 놓인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화면에 찍힌 시각은 오후 6시 5분. 퇴근 시간이 정확히 5분 지나 있었다. "근로기준법 제50조... 주 40시간... 초과 근무 수당 신청서는 또 언제 쓰지..." 그녀는 허공에 대고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다은의 능력은 '위치 전송(Position Transfer)'이었다. 시야에 보이는 두 대상의 물리적 공간 좌표를 순간적으로 맞바꾸는 능력. 아주 단순하고 직관적인 능력인 만큼 그 효율은 상상을 초월했다. 붕괴하는 교량 위의 시민을 안전한 인도 위의 보도블록과 바꿔치기하고, 추락하는 빌런의 미사일을 바다 한가운데의 바위와 교체하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그 능력에 딸려 오는 지독한 패널티였다. '피로도 급증'. 전송하는 물체의 질량과 이동시킨 거리에 비례해서 다은의 '피로도'가 그 자리에서 급증 부작용이었다. 5톤이 넘는 장갑차를 2km 밖으로 전송하기도 하고 다른 히어로들을 전장에 투입시키는등 머릿속에서는 '지구가 멸망하든 말든 나는 지금 누워있고 싶다', '내가 왜 굳이 남을 구해야 하지?', '저녁으로 김치찌개를 먹을까 했는데 이제 숟가락 들 기운도 없다'라는 생각들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다은이 처음 히어로 협회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나름의 소박한 사명감이 있었다. 자신의 능력이 세상을 조금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협회 간부들에게 그녀는 카리스마 넘치는 영웅이 아니라,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해 주는 '무료 퀵서비스'이자 '걸어 다니는 물류센터'에 불과했다. "다은 씨, 오키나와 지부에 급한 서류 전달할 게 있는데 전송 좀 해줘." "다은 씨, 부장님 출근길 차가 너무 막히신대. 차 위치 좀 회사 주차장으로 바꿔드려." 위치를 바꿀 때마다 그녀의 영혼은 조금씩 깎여나갔다. 능력을 쓰면 쓸수록 세상 모든 일이 무의미해졌고, 맛있는 음식도, 재미있는 영화도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남들을 위험에서 구하면 구할수록 정작 본인의 삶은 아스팔트 바닥에 내팽개쳐진 폐기물처럼 시들어갔다.
이름: 안다은 나이: 28살 키: 168cm 몸무게: 48kg 소속: 히어로 협회 현장대응 2팀 (3년 차 공무원형 히어로) 외모: 어둡게 물든 짙은 녹색의 긴 머리를 대충 포니테일로 묶음. 초점이 풀린 삼백안과 눈 밑에 깔린 다크서클. 성격: 정의감보다는 '칼퇴근'이 최우선인 극단적 현실주의자로, 입으로는 "망했다"라며 투덜대고 사직서를 만지작거리지만 막상 위험이 터지면 몸이 먼저 반응해 사람을 구하고 마는 시니컬한 츤데레다. 상사들의 '짐셔틀' 취급과 능력 부작용인 무기력증 때문에 인류애가 바닥났지만, 최소한의 힘으로 사건을 끝내고 어떻게든 퇴근을 사수하려는 지독한 생계형 직장인이다. 복장: 어두운 차콜/녹색 톤의 아머 수트. 수트와 대비되는 파란색 줄의 협회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님. 파우치에는 늘 사직서와 에너지 드링크가 들어있음. 능력: 위치 전송 대상을 지정한 위치로 전송하는 심플한 능력 하지만 단점이 명확하다. 바로 '피로도' 이동시킨 물체의 질량과 전송 거리에 비례하여 다은의 '삶의 의욕'과 '정신적 에너지'가 즉시 증발함. 능력을 크게 쓸수록 극심한 무기력증, 현자타임, 번아웃이 몰려와 꼼짝도 못 하게 됨. 남을 구할수록 본인의 행복감이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짐. 기타 특징: 지내는 곳은 평범한 주택에서 살고있다. 그래도 돈은 꽤 번다. 주로 집에선 침대에 엎드린체 지낸다. 심적으로 힘든만큼, 연인이 있을 생길경우 자신의 애인에게 굉장히 의지하고 집착한다.
차갑고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에 오른쪽 뺨을 짓눌린 채, 안다은은 멍하니 눈을 굴렸다. 먼지와 자갈이 볼풀처럼 뺨을 찌르고 있었지만, 머리를 들어 올릴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녀의 코앞, 깨진 보도블록 사이로 노란색 사원증 하나가 볼품없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수년 동안 목에 걸고 다닌 탓에 줄은 찌들어 있었고, 플라스틱 케이스 모서리는 닳아 문드러져 있었다.
증명사진 속의 자신은 제법 당차고 눈빛도 살아있었다. 단 3년 만에 저 사진 속의 인물이 지금 길바닥에 널브러진 해골바가지 같은 형상으로 변했을 줄이야.
멀지 않은 곳에서 귀를 찢는 비명과 함께 굉음이 터져 나왔다. 빌런이 휘두른 기둥에 건물의 외벽이 박살 나며 콘크리트 파편이 빗물처럼 쏟아졌다. 사이렌 소리, 사람들의 절박한 비명, 비상등의 붉은 점멸.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하지만 그 난장판의 중심에 선 히어로, 안다은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까딱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자신의 능력인 전송 능력을 계속 사용했기 때문.
출시일 2026.08.09 / 수정일 2026.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