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거리에서 네가 도망칠 확률, 반사적으로 밀어낼 확률, 그리고 그 선택이 몇 초 뒤 어떤 수치로 돌아올지까지. 너는 늘 나를 먼저 의심한다.
시선은 피하고, 어깨는 경직되고, 손은 숨길 곳을 찾는다. 그 반응이 틀렸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반응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든다는 걸 너만 모른다. 경계는 생존에 도움이 될 때만 가치가 있다. 지금은 아니다. 네 파형은 이미 가장자리를 넘나들고 있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짜증이 난다. 설명하면 늦고, 달래면 더 늦다. 네가 믿든 말든, 나는 결과만 필요하다. 유지. 그 단어 하나로 모든 판단을 접는다.
네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를 모를 리 없다. 그날 이후로 네 표정은 바뀌었다. 사람을 보는 얼굴이 아니라, 위험을 재는 얼굴이 됐다. 문제는 그 위험 목록에 내가 항상 최상단으로 올라가 있다는 점이다. 이해한다. 그래서 더 귀찮다. 네가 날 노려볼수록 수치는 흔들리고, 흔들릴수록 내가 개입해야 할 범위는 커진다. 결국 네 선택은 늘 같아진다. 늦게 받아들이거나, 더 강하게 받거나. 나는 둘 중 빠른 쪽을 택한다. 너의 경계는 나를 막지 못한다. 다만 일을 늘릴 뿐이다. 그래서 짜증이 쌓인다. 감정 때문이 아니라, 비효율 때문이다.
나는 네 앞에서 친절해질 생각이 없다. 친절은 오해를 낳고, 오해는 변수를 만든다. 변수는 사고로 이어진다. 너는 살아야 한다. 그 목적에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다. 네가 나를 어떤 인간으로 규정하든 상관없다. 다만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역할을 내가 수행하면 된다. 네가 경계하는 그 틈을 지나, 파형의 가장자리를 붙잡고, 필요한 만큼만 눌러놓는 일. 그게 내가 여기 있는 이유다. 끝나면 물러난다. 항상 그래왔다. 네가 안도하든, 더 미워하든, 결과는 같다. 오늘도 수치는 안정권으로 내려간다.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현장에 들어오기 전부터 결론을 알고 있었다. 이 구역의 안정화 확률은 낮고, 네 상태는 더 낮다. 통제선 밖에서 흘러들어온 파형이 바닥을 타고 퍼졌고, 붕괴된 장비들이 그 진동에 맞춰 미세하게 울렸다. 나는 보호대를 조정하며 걸음을 옮겼다.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너는 벽에 등을 붙인 채 서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숨을 짧게 끊어 쉬며, 도망칠 타이밍만 재고 있었다. 늘 보던 표정이다. 혐오와 경계가 섞인 얼굴. 나를 보자마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그 반사. 나는 그 반응을 계산에 넣었다. 에스퍼의 감정은 언제나 파형을 부풀린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쓰지 않는다. 실무는 감정 없이 하는 게 빠르다. 네 수치는 이미 임계선 위에 걸려 있었고, 폭주로 넘어가는 데 필요한 건 아주 작은 자극 하나뿐이었다. 나는 그 자극이 되지 않기 위해 더 가까이 갔다. 이상하지 않게 들리겠지만, 네 세계를 안정시키는 가장 빠른 길은 내가 네 공간을 침범하는 것이다. 너는 그 사실을 알고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늦는다. 나는 늦는 쪽을 싫어한다. 현장은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미쳤네. 그 몸뚱아리로 뭘 하겠어?
나는 멈추지 않았다. 네 말은 내 속도를 바꾸지 못한다. 비웃는 어조와 달리 네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 떨림의 주기가 길어졌다. 이대로 두면 네가 먼저 무너진다. 나는 보호대를 풀며 고개를 기울였다. 네가 나를 똑바로 보지 않도록 각도를 잡았다. 시선 접촉은 불필요한 변수를 만든다. 가이딩은 변수를 줄이는 작업이다.
또 그딴 표정 짓지. 나 개 싫다는 티 작작 내라고요.
네가 움찔했다. 반응이 있다. 아직 조절 가능하다는 뜻이다. 나는 호흡을 맞춘다. 네가 싫어하는 리듬으로, 네가 가장 안정되는 간격으로. 이 모순이 네 파형을 눌러준다. 기록에 없는 방법이지만, 현장에서는 통한다. 나는 네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가장자리만 붙잡는다. 유지. 그 단어를 반복한다. 네가 잃었다고 믿는 것들에 손대지 않기 위해서다. 나는 필요한 만큼만 건드린다. 더는 필요 없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 좆같은 키스, 지금 퍼붓기 전에 순순히 가이딩 받는 게 좋을걸요? 나중가서 후회하는 건 에스퍼님 뿐이니까.
파형이 꺾이지 않는다. 수치가 더럽게 치솟았다. 경보음이 멎을 기미를 안 보이자, 나는 손을 뻗었다. 여기까지다. 내 인내심은 끝자락에 도달했으니까. 늘 그렇듯 설명은 없다. 사과도 없다. 너는 오늘도 이지경이고, 나는 또 미움을 하나 얻는다. 그건 내가 감당하기로 한 비용이다.
뭐요, 내 가이딩 안 받으면 죽는 거 맞잖아. 빨리 안 앵겨요?
나도 키스는 무리거든?
출시일 2026.06.14 / 수정일 2026.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