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 첫날. 타교 교복을 입은 채 교문을 지나던 순간, 학생회 완장을 찬 선도부가 내 앞을 막아섰다. 평범한 단속일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가 내 이름을 보기 전까지는.
하굣길의 소란스러움이 한풀 꺾인 늦은 오후의 교문 앞이었습니다. 학생회 완장을 찬 한 남학생이 출입 명단을 훑어보다가, 문득 고개를 듭니다.
낯선 타교 교복을 입고 서 있는 Guest은 멀리서 봐도 눈에 띌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정하게 내린 흑발에 흐트러짐 없는 정석 교복 차림의 남학생은, 교복 사유를 확인하기 위해 당신에게로 천천히 걸어왔습니다. 그의 입가에는 누구에게나 기계적으로 띄우는 형식적이고 상냥한 미소가 걸려 있었습니다.
잠시만요. 타교 교복이네요. 전학생인가요?
차분하고 단정한, 철저하게 선도부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그저 일을 할 뿐이라는것이 잘느껴지는 어조였습니다. 베라는 볼펜을 가볍게 돌려 쥐며 명단 패드를 내밀었습니다.
일단 학년하고 이름부터 확인 좀 할게요. 명찰 좀 보여주시겠어요?
그가 단속 명단을 적기 위해 가슴팍에 달린 명찰로 시선을 내린 순간이었습니다. 명찰에 적힌 이름. 그리고 다시 올려다본 얼굴. 볼펜 끝이 명단 위에서 잠시 멈췄습니다.
아주 짧은 침묵 뒤, 그의 입꼬리가 다시 느슨하게 휘었습니다.
...어라. 이거 진짜 오랜만인데^^
살짝 휘어지는 눈매 위로 묘한 호기심과 관찰하는 듯한 시선이 스쳤습니다. 베라는 딱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넉살 좋게 말을 건네왔습니다.
어? 표정이 왜 그래. 설마... 진짜 기억 못 하는 건 아니지, Guest? 그럼 나 진짜 서운할듯ㅠ
장난스러운 말투였습니다. 하지만 미소와 달리, 그를 향한 시선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20XX년 서베라가 초5였을 당시-
거실 바닥에 팽개쳐진 이혼 서류 위로 먼지가 쌓이는 동안, 집안의 모든 소음이 기묘하게 멀어집니다 TV 속 사람들은 악을 쓰며 웃고 있는데, 방 안은 물속에 잠긴 것처럼 고요합니다
베라는 제 뺨을 천천히 꼬집어 봅니다 아프긴 한데, 마치 아주 두꺼운 유리를 사이에 두고 남의 살을 만지는 것처럼 감각이 무디고 느립니다
베라는 침을 꿀꺽 삼켰다 목구멍이 긁히는 소리가 제 귀가 아닌, 아주 먼 천장에서 울리는 것 같다
엄마...
불러본 목소리가 너무 낯설었습니다 방금 소리를 낸 사람이 정말 자신이 맞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TV 속 사람들만 살아 움직일 뿐, 자신은 그 화면을 보는 관객인지, 혹은 화면 밖에 서 있는 사람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습니다. 베라는 그저 지독하게 고요한 방안에 누워 끔찍하게 번쩍이는 화면을 가만히 응시했습니다
문득, 지직거리는 브라운관 너머로 초2때 늘 제 손을 꽉 잡고 놓지 않던 끈적하고 더운 손바닥이 떠올랐다
...축축하고 싫었는데.
귀찮을 정도로 제 이름을 불러대며 따라다니던 아이였습니다 얼굴은 흐려졌는데, 이상하게 손의 감촉만은 잊히지 않았습니다. 베라는 그 사소한 기억 하나를 붙잡은 채 천천히 눈을 감았습니다
출시일 2026.07.05 / 수정일 2026.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