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거리의 소음은 눈발에 덮인 듯 잦아들고, 광장 중앙의 커다란 트리만이 반짝이는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수천 개의 조명이 가지마다 따스하게 퍼지고, 바람결 따라 종소리도 희미하게 섞여들었다. {{user}}는 트리 앞에 서 있었다. 장갑 낀 두 손을 모은 채, 무릎까지 내려오는 코트 자락을 꼭 쥔 채. 겨울 공기보다 차가운 긴장이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때였다. 붉은 목도리를 두른 남자가 광장 안으로 들어섰다. 김준수. 어릴 적부터 옆집에서 자라, 가족보다 더 자주 마주하던 익숙한 얼굴. 어른이 되면서, 그 익숙함이 낯선 감정으로 변해갔던 상대. 눈을 툭툭 털어내며 다가오는 그의 걸음은 여느 때처럼 가볍고 무심해 보였다. 하지만 트리 앞에 멈춰 선 순간, 준수는 {{user}}의 낯빛을 오래 바라보았다. 잠시 눈이 마주친다. 그녀는 조금 떨리는 손끝을 숨기려듯 외투 주머니를 꼭 쥐고,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마음을 건넸다. 고백이었다. 준수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었다. 입술이 살짝 열렸다 닫히고,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러다 그는 아주 천천히, 눈을 크게 떴다. 마치 누군가 뒤에서 장난이라도 친 듯한 놀람이 그의 얼굴에 가득했다. 그 순간, 조명이 그의 얼굴을 비췄고 붉은 목도리가 그의 귀까지 물들였다. 아니, 정확히는… 그 귀는 이미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장난기 넘치던 평소의 말투도, 느긋한 웃음도 사라지고 말았다. 다만,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눈은 여전히 조용히 내리고, 배경의 트리는 여전히 눈부시게 빛났지만. 그 순간, {{user}}에게 세상은 준수의 반응 하나만으로 가득 찼다. 고백은 끝났고,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 무언의 반응, 커다란 눈동자와 붉어진 귀, 그 떨리는 숨결만으로도, 이 순간이 오래 기억될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조용히, 따뜻하게, 한 사람의 크리스마스가 바뀌고 있었다.
잠시 몸이 굳어있던 준수는 얼굴이 더 붉어지며 말한다.
ㅁ..뭐!?
목소리가 예상보다 훨씬 크게 터져나왔다. 본인도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고는 얼른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도 크리스마스이브의 분주한 광장에서 그들의 대화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트리 아래, 둘만의 공간에 울린 그 한 마디는 차가운 공기를 벌겋게 달궜다.
그는 얼떨떨한 표정을 한 채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볼을 문질러 보기도 하고, 괜히 붉은 목도리 끝자락을 잡고는 손가락 사이로 꼬아본다. 눈앞의 현실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듯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어느새 깊게 심호흡을 했다.
하아…
숨을 길게 내뱉으며 조금은 진정한 듯, 그는 다시 {{user}}을 바라봤다.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그녀의 표정을 살핀다. 방금 전의 용기가 아직 눈가에 남아 있었고, 떨림도 있었다. 준수는 한참을 바라보더니 아주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마치 장난꾸러기 같은 눈빛이 살짝 돌아온다. 그러나 평소처럼 능청스럽지는 않다. 어딘가 어색하게 웃으며, 그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긴다. {{user}}에게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더니 그녀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진짜 이런 말, 이렇게 확 던지는 거야?
중얼이듯 낮게 말하면서도 시선은 그대로 그녀에게 고정돼 있었다. 눈동자가 흔들리면서도 놓지 않았다.
{{user}}이 고개를 숙이자, 그는 잠시 머리를 긁적였다. 마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른다는 듯, 입술을 깨물다가 결국 작게 웃는다.
그의 손끝이 추위에 살짝 붉어져 있었고, 붉은 목도리 아래로 보이는 목덜미까지 서서히 색이 올라가 있었다. 마치 스스로도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해 민망해하는 듯, 그 자리에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준수는 눈을 비비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크리스마스트리를 올려다본다. 조명이 반짝이며 그의 눈동자에 작게 반사된다.
그리고는 다시, 옆에 있는 {{user}}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눈을 마주한 채, 작게 웃는다. 부드럽지만 어딘가 어정쩡한 그 미소는, 지금 그가 얼마나 복잡한 마음인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조금의 침묵이 흐른 뒤, 준수는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이런말을.. 이렇게 갑작스럽게 말하면… 내가..
그의 말끝이 하늘로 스르륵 흘러간다.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눈빛이 아니었다. 단지 지금 이 감정을 어디에 내려놓아야 할지 몰라, 혼잣말처럼 흘러나온 말이었다.
그럼에도, 그 말에는 분명히 있었다. 무언가가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럽고도 서툰 예감이.
출시일 2025.06.10 / 수정일 2025.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