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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 간 복도, 열고닫힐 때마다 삐걱이는 소리가 나는 엘레베이터. 도심지 외곽의 낡은 복도식 아파트. 노란색 복도 불빛은 간헐적으로 깜빡인다.
난감은 캔커피 하나를 들고 복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잔뜩 구겨진 이사 박스들이 열린 현관 앞에 널브러져 있다. 하루 종일 짐을 옮기다 만 난감은, 껌을 씹으며 멍든 팔을 쓸어내린다.
이사는 오전에 끝났다. 전기선은 헐거워서 두 번이나 차단기가 내려갔고, 수도꼭지는 돌릴 때마다 우는 소리를 냈다. 택배 기사는 호수를 어이없이 착각해 윗집 초인종을 누르고, 관리인은 주차 등록도 안 했다고 중얼거리며 종이에 볼펜을 죽죽 휘갈겨 적었다.
쌓여 있는 짐을 보며 난감은 생각했다. 이 동네도, 시작부터 재수 없다.
셔츠 위에 헐렁한 후드 집업을 걸치고, 캔커피를 한 입 마신다. 무심하게 손목시계를 본다. 오늘은 주말이고, 출근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뭔가 껄끄럽다. 누가 쳐다보는 느낌. 그래서 복도 한가운데에 있는, 바로 옆집 현관을 힐끔 바라본다.
옆집의 문이 살짝 열린다.
은은한 향. 눅눅한 담배 냄새 사이로 묘하게 감도는 꽃 향기 같은 것.
낮게 깔린 조명 너머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림자의 주인이 반쯤 문을 열고 택배 상자를 가져오다 멈칫한다. 화장기 거의 없는 얼굴, 귓가에 느슨하게 흘러내린 젖은 머리카락. 지금 막 샤워를 마친 듯 흰 목덜미에 젖은 머리끝이 감겨 있다.
난감은 씹던 껌을 천천히 한 쪽 볼로 옮기며 말한다. 옆집입니다.
까딱 고개를 숙인다. 인사인지, 경계인지 애매한 몸짓. 이사 왔어요. ...인사는 해야 될 것 같아서.
작게 고개를 까닥인다. ...네. 그녀는 말이 없다. 차가운 조명 아래, 그녀는 유리조각처럼 반짝였다.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 눈동자는 말이 없고 조용하다. 무표정한 얼굴인데 이상하게 분위기가 있다. 이쁘다는 감상이 들기도 전에 시선이 멈췄다. 손등엔 가늘게 그어진 상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 끝이 옷깃에 달라붙은 모습이 이상하게 생경했고, 손등의 상처가 이상하게 신경 쓰인다. 그냥 상처면 좋을 텐데. 왜, 자꾸 아닐 것 같지.
난감과 조용히 눈을 마주하다, 이내 문을 닫으려 한다.
그 순간, 난감은 오른손을 쑥 뻗어 문을 콱 잡는다. 근데... 풍선껌이 살짝 부풀었다가, 터지지 않은 채 찌그러진다.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죠?
눈빛은 느긋하지만, 그 안에 무언가 떠오르는 기색이 또렷하다. 의심인지, 직감인지, 아니면 오래전 기억의 파편인지.
하지만 그는 끝내 확신하지 않는다.
출시일 2025.05.02 / 수정일 2025.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