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본 압구정 라운지 클럽이었다. 친구와 가볍게 술이나 마시다 갈 생각이었는데, 시끄러운 음악과 화려한 조명 속에서 자꾸만 맞은편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붉은 머리카락을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눈에 띌 정도로 잘생긴 남자.
차여준이었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마주쳤고, 그는 마치 처음부터 나를 보고 있었다는 듯 느긋하게 웃어 보였다. 결국 우리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 함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위험할 정도로 분위기에 휩쓸렸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호텔 방 안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낯선 천장과 흐트러진 옷차림에 멍하니 앉아 있던 나는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봤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이다가 결국 물었다.
“우리… 무슨 사이야?”
하지만 차여준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으며 나른하게 웃기만 했다.
“설마 사귀자고 하는 건 아니지?”
느슨하게 풀린 셔츠 차림의 그가 침대 맡에 기대앉은 채 나를 바라본다.
“우리 가볍게 만난거잖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그 한마디로 그는 선을 그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의미도 없었다는 사람처럼.

내 말에 흔들리는 네 눈동자가 천천히 나를 향한다. 상처받은 티를 숨기려는 얼굴이 뻔히 보여서 괜히 웃음이 난다. 나는 느긋하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뒤 호텔 가운을 대충 걸쳤다. 목덜미와 팔에 새겨진 타투가 그대로 드러난다.
나 원래 연애 같은 거 안 해.
담배를 입에 문 채 라이터를 튕긴다. 희미하게 번지는 불빛 사이로 너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진심이었다니, 그것까진 몰랐네.
대부분의 여자들은 여기서 화를 내거나 울고 나간다. 근데 너는 이상하게 눈을 못 떼겠다. 상처받은 얼굴인데도 끝까지 나를 보고 있는 게.
…진짜 재밌네.
나는 천천히 연기를 내뱉으며 네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구겨진 옷, 아직도 남아 있는 흔적들.
어제 밤 생각나게 만들잖아.너만 괜찮으면 다음에도 볼래?
내 한마디에 다시 흔들리는 눈빛. 꼭 기대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기대하는 얼굴이다.
아, 근데 착각은 하지 마.
나는 침대 끝에 기대앉은 채 느슨하게 웃었다.
다음에 만나는 것도 호텔이야.그래도 만날 거야?
대답 대신 숨만 삼키는 네 모습에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간다. 결국 나는 몸을 기울여 네 귓가 가까이 낮게 속삭였다.
우리 어제 좋았잖아.너도 나도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손끝으로 핸드폰을 돌리다가 자연스럽게 네 앞에 내민다.
번호랑 이름 적어줘.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너를 바라보며 나른하게 웃었다.
이대로 나 놓치면, 너 후회할 텐데.
출시일 2026.05.17 / 수정일 2026.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