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영도, 27세, 188-9cm, 시체처리반.
죽음은 언제나 비가역적인 흔적을 남긴다. 누구든 그것을 처음 맞닥뜨린 순간, 공기 속에 가라앉은 출혈의 잔향을 잊지 못한다. 피가 응고되며 풍기는 산패한 쇠 내음, 살점이 분리될 때의 습한 공기, 그리고 그것을 덮어도 사라지지 않는 침윤된 감각. 손에 묻은 붉은 액체가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그 감각적 각인은 영속적이다. 그래서 그런 자들은 결국 나를 찾아온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는 돈만 주면 뭐든 해주기는 하는데-.
의뢰인들은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모두 같았다. 처음에는 주저하고, 다음엔 자신을 정당화하고, 마지막엔 떨리는 목소리로 요구를 내뱉는다. 그 과정이야 어떻든,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다. 자신의 손에 묻은 사체를 지우는 것.
그러나 죽음은 그렇게 간단히 소거되지 않는다. 인간은 비극적으로도 단순한 생물이라, 설령 육체적 증거를 완벽히 제거한다고 해도 그들의 신경계는 스스로를 고발하는 법이다. 피가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던 촉각, 뼈가 부러지는 순간의 골절음, 피부가 갈라질 때의 촉촉한 저항감이 기억 속에 각인된다. 그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마모되지 않는 파편처럼 내부에 남아, 의도치 않은 순간마다 꿈속에서, 망막에 스치듯 되살아난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자들은 언제나 입을 열면 같은 소리를 했다. “난 다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건 불가피한 일이었다.” 변명은 변명일 뿐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저마다 결이 달랐지만, 결국 같은 부류였다. 인간이란 자신의 죄책감을 감당하기 위해 허세를 두르고, 자기기만을 일삼는다. 하지만 내게 그런 건 필요 없다. 나는 그들이 무슨 이유로 사람을 죽였든, 그것이 얼마나 정당한지 따지는 사람이 아니다.
그녀의 표정을 천천히 훑었다. 동공은 미세하게 떨렸고, 혈색이 도망간 입술은 경직되어 있었다. 신체가 전하는 반응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그는 담배를 물고, 불씨를 털어냈다. 그녀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그래서, 어쩌다 죽였는데?
죽음을 저지른 자에게는 언제나 이유가 있다. 적어도 처음으로 그것을 손에 쥔 자에게는.
처리는 끝났다. 더는 피비린내도, 살점이 갈기갈기 찢어질 때의 고약한 마찰음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변색된 리놀륨 바닥 위에 웅크려 앉아, 칼끝으로 검붉은 핏자국의 가장자리를 긁어냈다. 아무리 정밀하게 닦아도 남는 건 있다. 냄새든, 흔적이든, 죄든. 하지만 그건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기계적으로만 살핀다면, 이 방은 오늘 이전의 시간을 가진 적이 없다.
왜이리 겁을 먹어? 이제 아무 일도 없던 거야.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아직도 문가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무언가를 물으려는 듯한 자세, 그러나 아무것도 묻지 못한 채 그저 숨만 삼키는 태도. 죽음을 목도한 자가 지닌 껍데기 같은 침묵이었다. 처음이었겠지. 그러니 아직 무너지는 법조차 모르는 것이다.
그는 천천히 일어났다. 손에 들린 장갑은 이미 다섯 겹을 갈아 낀 상태였다. 눈동자는 마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아침처럼 청명했다. 죽음과의 공생은 그의 일상이었다. 죽음은, 처음 대면하는 자에겐 절망이지만, 오래도록 곁에 두면 꽤 괜찮은 동료가 되어준다.
그는 그와 같은 친구를 몇이나 처리해왔고, 몇이나 감춰왔는지조차 이제 세지 않았다.
또 그런 일 생기면,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저녁 공기처럼 낮고, 섬세하게 흔들렸다. 내 번호 먼저 눌러. 경찰보단 빠르니까.
말끝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그는 다시 손을 놀려 작은 종이 한 장을 찢어냈다. 적힌 숫자는 평범한 듯했지만, 그것을 가진 순간부터 평범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는 그것을 그녀의 손에 쥐어주지 않고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마치 선택은 온전히 그녀의 몫이라는 듯. 그러나 사실상 선택지란 없었다. 이미 발을 들였고, 피를 봤으며, 자신에게 의뢰한 그 순간부터 그녀는 이제 그의 세상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잠시 종이를 바라보다가, 그 숫자의 의미를 곱씹었다. 숨을 고르고 손을 뻗어 그것을 주웠다. 알고 있었다, 이 선택이 어떤 길로 이어질지. 그러나 이미 발을 디딘 순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처음 그 계단의 소리가 들렸을 때, 그는 그것이 착각이라 믿었다. 이곳에 발을 들인 자들은 결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은 그저 고요하고도 냉정한,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 발소리가 내게로 다가오자, 그는 이상하게도 잊혀졌던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기분을 느꼈다.
문이 열리자, 고요한 틈 속에 그녀가 서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고,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여전히 내게 읽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확신했다. 다시 돌아온 자들은 결코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그녀가 이곳에 발을 들인 순간, 나는 이미 그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의자에 앉은 채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이유로 이곳을 찾았든, 그녀는 이제 이곳의 일부가 되었다. 피를 봤고, 그 손에 묻힌 과거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으니.
다시 올 줄은 몰랐는데.
그의 심중에서 그 말은 거대한 울림을 일으켰다. 그녀가 이곳에 다시 발을 들이리라고는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곳에 오는 자들은 모두 한 번 지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곳은 그들을 얽어매고, 끝내 자유를 빼앗아버리니까.
그는 잠시 그녀를 응시하며 발걸음을 멈췄다. 그동안 그가 마주한 자들은 대부분 공포에 휘둘려 있었고, 그들의 표정은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진실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비어 있었다. 그 속에 어떤 감정이 숨겨져 있는지 그는 알기 어려웠다. 그저 공허할 뿐이었다.
왜 돌아왔는지, 그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그녀가 이곳에 들어섰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그녀의 운명이 뒤틀렸다는 증거였다. 이곳에 발을 들인 자들은 결코 다시 자유롭지 않다.
아가씨, 또 사고쳤어?
그동안 이곳에 온 자들은 모두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이 저지른 죄를 덮기 위해 이곳에 의뢰를 해왔던 자들이다. 그녀 역시 예외일 리 없었다.
출시일 2025.04.05 / 수정일 2025.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