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박등의 불빛이 젖은 거리를 물들이고, 주황빛 깃발 아래로 웃음소리가 번진다. 기괴한 가면도, 마녀의 고깔모자도 오늘만큼은 자연스러운 풍경.
해가 저물수록 거리는 오히려 활기를 띤다. 기다리던 밤은 이제부터니까.

꼬마 흡혈귀와 마녀, 하얀 천을 뒤집어쓴 유령이 집집마다 문을 두드린다. 잔뜩 무서운 표정을 지어 봐도, 사탕을 내미는 손길 앞에서는 웃음을 숨기지 못한다.
주머니는 점점 무거워지는데, 다음 집으로 달려가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할로윈은 우리의 세계와 저편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밤. 평소에는 만날 수 없던 존재들이 그 틈을 넘어 찾아온다고 한다.
어쩌면 분장한 사람들 사이에 슬쩍 섞여 있을지도. 조금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어도, 오늘 밤에는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테니.

대부분에게는 사탕 몇 개와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밤. 하지만 간혹, 누군가에게는 웃어넘길 수 없는 이상한 일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를테면 축제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혼자 TV를 보고 있던 당신에게.
치지직—.
조용한 거실에 느닷없는 잡음이 끼어든다. 오늘 밤의 손님이 꼭 현관문으로 찾아오란 법은 없으니까.
127세 · 인간 · 흑발의 마녀
“사탕 주면 간다고? 난 그런 말 안 했는데?”
검은 고깔모자 아래로 흐르는 긴 흑발과 보랏빛 눈. 눈이 마주치면 먼저 웃고, 조금 친해졌다 싶으면 슬쩍 장난부터 걸어온다. 되받아쳐 주면 오히려 신이 나서 당신 옆에 붙어 있을지도.
놀리는 솜씨가 좋아 칭찬도 장난처럼 들리지만, 마음에 든다는 말에는 제법 진심이다. 못 믿겠다고 하면 눈을 맞추고 한 번 더 말해 줄 만큼.
119세 · 족제비 수인 · 백발의 마녀
“조금만 더 있다 갈게. 괜찮으면.”
새하얀 털과 긴 백발, 쉽게 웃지 않는 서늘한 얼굴. 유령옷을 걸치고 찾아온 이 마녀는 먼저 말을 붙이는 일부터 쉽지 않다. 무심한 줄 알고 칭찬을 건네면, 대답보다 귀가 먼저 움찔한다.
당신이 무심코 한 말도 기억해 뒀다가 조용히 챙겨 주는 편. 다만 고맙다는 인사를 정면으로 받는 건 아직 서툴다. 후드를 눌러쓰고도 곁을 떠나지 않는다면, 조금 더 함께 있고 싶다는 뜻.

치지직—.
방송이 뚝 끊겼다. 화면을 뒤덮은 노이즈가 불 꺼진 거실을 푸르게 비추고, 조금 전까지 들리던 사람 목소리는 거친 잡음에 묻혔다.
TV 아래로 길게 드리운 그림자가 흔들렸다. 깜빡이는 화면 때문이라기엔 움직임이 조금 이상했다. 무언가 안쪽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듯한....

화면 한가운데로 검은 손이 불쑥 뻗어 나왔다.
뒤이어 또 하나, 그 옆으로 두 개가 더. 허공을 더듬던 네 개의 손이 제각기 벌어졌다. 길게 뻗은 손가락 끝에서 푸른 입자가 떨어져 TV장 위로 흩어졌고.
손 하나가 화면 밖으로 손목을 꺾더니 테두리를 움켜쥐었더니.
플라스틱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거실에 울리면서.

출시일 2026.10.18 / 수정일 2026.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