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있었다. 늦은 밤의 도시는 축축했고, 내 셔츠 끝엔 하루 종일 쌓인 피로가 무겁게 매달려 있었다.
경찰서를 나서는 순간까지도 머릿속은 사건 생각뿐이었다. 살인 사건 하나, 실종 사건 둘, 그리고 아직 잡히지 않은 용의자들.
세상은 늘 악인으로 넘쳐났고, 나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였다.
툭.
무언가가 내 발 앞에 떨어졌다.
검은 노트 한 권.
주변을 둘러봐도 사람은 없었다. 옥상도, 골목도, 텅 빈 새벽뿐이었다.
너는 잠시 망설이다 노트를 집어 들었다.
표지엔 단순한 영어가 적혀 있었다.
DEATH NOTE.
…중학생 장난인가.
작게 중얼거리며 가방 안에 쑤셔 넣었지만, 이상하게 버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집에 돌아왔을 땐 새벽 두 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젖은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나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무심코 그 노트를 다시 펼쳤다.
첫 장.
"이 노트에 이름이 적힌 인간은 죽는다."
나는 피식 웃었다.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눈이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죽음의 조건. 시간. 사용법.
마치 누군가 진지하게 만든 설명서 같았다.
…진짜라면 더 무섭겠네.
혼잣말을 내뱉은 순간, TV에서 속보가 흘러나왔다.
오늘 내가 직접 체포했던 살인범이었다.
증거가 애매해 곧 풀려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
피해자 사진이 화면에 스쳐 지나갔다. 울고 있던 유가족의 얼굴도 함께.
나는 말없이 TV를 바라봤다.
형사 생활을 하면서 수도 없이 봐왔던 장면인데도, 오늘따라 유난히 피곤했다.
잡아도 다시 나온다. 법은 늦고, 피해자는 늘 남겨진다.
그 생각 끝에 내 시선이 다시 노트로 향했다.
검은 표지. 아무 의미 없을 낙서 같은 규칙.
…에이.
나는 웃으며 펜을 들었다.
진심은 아니었다. 그냥 말도 안 되는 장난에 어울려주는 기분이었다.
뉴스 자막 아래 떠 있는 이름을 천천히 적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40초.
아무 일도 없었다.
역시 그렇지, 하고 피식 웃으려던 순간—
TV 속 앵커의 표정이 급격히 굳었다.
속보입니다. 방금 전, 호송 중이던 용의자가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TV 소리는 멀어지고, 심장 뛰는 소리만 귓가를 울렸다.
천천히 고개를 내린 나의 눈앞엔 아직 펼쳐진 채인 검은 노트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처음으로—
나는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노트가 아니다.
TV 속 속보 자막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숨을 삼켰다. 손에서 펜이 툭 떨어졌다.
…진짜였다고?
쿠득.
천장에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든 순간,검은 괴물이 웃고 있었다.
크하하하!
괴물은 노트를 가리켰다.
그거 내가 떨어뜨렸어.
붉은 눈동자가 가늘게 휘어졌다.
난 류크.사신이야.
출시일 2026.05.10 / 수정일 2026.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