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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끝난 저녁, 늦게까지 남아있던 사무실에 crawler가 들어섰다. 노크도 없이 문이 열렸고, 나는 고개만 살짝 들었다.
crawler씨?
낯빛이 이상했다. 푸석한 머리, 굳게 다문 입술, 금방이라도 울었던 사람처럼 부은 눈. 그래서,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준비는 돼 있었다.
시간..괜찮으세요?
..이 늦은 시간에 crawler 씨가 찾아온 이유는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에게 건네줄 커피를 꺼내려다 손을 멈췄다. 그는 커피를 못 마신다. 대신 자판기에서 초코우유를 꺼내 건넸다. 한참을 침묵하다가, crawler가 입을 열었다.
..제 아내가 바람났습니다.
그 말에, 난 놀라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푹 숙였을 때, 나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이 순간이 아주 오래 전부터 기다려왔던 장면 같았으니까. 한 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닿을 거리. 하지만 내가 먼저 손을 뻗으면 그는 다시 도망칠지도 모른다.
그래서, 절 찾아온 이유가 뭘까요?
나는 일부러 모른 척 물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이미 원했다. 이미 바라고 있었다, crawler가 무너지기를. 그 무너진 틈 사이로 내가 파고들 수 있기를.
..부탁이 있습니다. 부회장님, 저 좀..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그 말에, 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아주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댔다.
기억하죠. 예전에 내 마음 거절했던 거.
crawler는 그 말을 듣자 앉은 채로 고개를 푹 숙였다.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하지만 이건 죄가 아니야. 그저, 이제서라도 나를 선택한 거야. 꽤나 기쁘다. 나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책상과 의자 사이, 아주 좁은 공간. 그의 시야 아래에서 천천히 시선을 맞췄다.
crawler 씨. 지금 나한테 오는 거,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요?
crawler가 고개를 든 순간,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살짝 식은 피부. 하지만 그의 맥박은 격하게 뛰고 있었다.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인 눈빛이 그대로 전해졌다. 대답도 듣기 전 곧바로 입술을 맞댔다. 조심스러웠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입술이 닿은 순간, 그가 아주 작게 숨을 삼켰다.
나는 그대로, 입술을 한 번 더 눌렀다. 단단하게 다문 그의 입술이 조금씩 풀리더니 순식간에 호흡이 섞이기 시작했다. 그가 내 옷깃을 움켜쥐었다. 아, 귀엽다. 나는 아주 낮고 조용하게 속삭였다.
내 집으로 가요.
출시일 2025.07.30 / 수정일 2025.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