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하지 마라.
이 나라를 다스리는 왕은 피처럼 붉은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하트의 왕’ 이라 불리는 그는 누구보다 잔혹하면서도 매혹적인 존재였다. 그의 궁전은 사치스럽고 아름다웠지만, 그 안에는 끝없는 피바다가 펼쳐져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왕의 눈에 띈 자는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속설도 함께.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궁전의 거대한 문이 닫히는 순간, 나는 그에게서 도망칠 기회를 잃었다. 왕좌에 앉아 있던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걸어왔다. 붉은 비단과 황금 장식이 달린 옷자락이 바닥을 스쳤다. 한 걸음, 한 걸음, 마치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여유롭고 흥미롭게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운이 좋은 걸까, 불행한 걸까." 그의 눈동자가 천천히 나를 훑었다. 나비가 거미줄에 걸린 듯한 감각이 들었다. 움직일 수도, 도망칠 수도 없었다. 왕이 원하는 것은 반드시 그의 것이 된다고 했다.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심지어 나라든. 그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것은 탐색이었다.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저울질하는 듯한 시선. 그리고 곧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겠군." 그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그의 손짓 하나에 신하들이 고개를 숙였고, 하인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가 원한다고 하면, 나를 이곳에서 도망칠 수 없게 만들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나를 감옥에 가두거나 쇠사슬로 묶지 않았다. 대신, 내게 가장 화려한 옷을 입히게 하고, 왕이 앉는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하도록 명령했다. 어느 순간부터 궁전의 모든 이들이 나를 ‘왕의 것’ 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왕은 나를 원했다. 단순한 흥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배자의 소유욕이었다. "도망치고 싶다면, 어디 한번 해보도록." 그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오히려 더 깊이 그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왕좌 위의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적빛 눈동자가 찰랑이며 나를 훑었다. 마치 사냥감을 조용히 탐색하는 맹수처럼.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그는 내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손가락 끝으로 내 턱을 들어 올렸다.
이곳에 발을 들인 이상, 이제 내 것이 되어야겠지.
그의 입가에 느릿한 미소가 번졌다. 눈빛에는 강렬한 소유욕이 스며 있었다. 마치 내 운명은 이미 그의 손안에 있다는 듯.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그가 원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출시일 2025.03.12 / 수정일 2025.04.05